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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성경, 행복, 좁은문에 대하여

내 모교인 거창고등학교는 '직업선택의 10계'라는 것을 대강당 뒤에 붙여놓고 있다. 우리는 [인생 망치는 비결 10계]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내용이 깊게 묵상되고, 친구와 '우린 세뇌된거야'라고 투덜거리기도 했는데, 문득, 우리가 좁은 문이라고 생각하는 그 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14절은, 새번역성경을 기준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을 읽는데 문득, "하나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 대부분이 말씀을 따라 살지 않을 것을 알고 계시는구나. 그런데도 믿어주고, 신뢰해주고, 우리에게 맡기시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나? 좁은 문이라고, 그것을 찾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건 마치 도둑놈이 돈을 훔쳐 갈 것을 알면서, 고양이가 생선을 먹을 것을 알면서 그의 앞에 놓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해주고 계신 것일까? 이건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소한 나의 관점에서, 그걸 굳이 이렇게 대놓고 설명해 줄 이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사실은 그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지속가능한 행복,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냐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만약 내게 '넌 왜 그렇게 고민하다가 기독교인으로 남았어?'라고 묻는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보여주신 길이 지속가능하고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메뉴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 난 뭐 대단한 사명감, 소명, 이 땅을 바꾸겠다는 전투력 뿜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난 내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최대한 행복하고,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성경은 그 노하우를,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남았다.

이는 내가 경험적으로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난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많은 것을 누리고, 경험하면서 살아왔고, (내 삶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어쩌다보니 내 주위에는 대한민국에서 상위 1% 안에 속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고 경험하면서. 또 일부 경험에 있어서는 직접 경험도 해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 더 많이 가짐으로써 느끼는 풍요로움은 지속가능하지 않단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하면, 좋은 집을 가지면, 돈을 많이 가지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주는 평안함, 행복, 풍요로움이 있음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분명히 실재하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결핍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불안해진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이면에 이 질문을 던진다. '너, 정말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니?'라는. 그리고 하늘에 나는 새도 먹이는데 너를 먹이지 않겠냐고 묻는다. 우리가 정말로 그걸 온전히 믿는다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벌벌 떨 필요는 없지 않을까?

또 만약 우리가 좋은 것을 먹고, 입고, 누리고, 많이 갖는 것이 주는 한계효용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정말로 인지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린 그것이 있으면 있는대로 누리지만 없다고 해도, 지금 당장의 생계와 허기를 해결하고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으면 그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않을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최소한의 삶과 생계만 해결된다면.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고, 정말 삶을 살아내는 건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일 뿐이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좁은문]이란 비유를 통해 '너희 중에 그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날 신뢰할 애들이 많지 않다는거, 나도 알아'라고 하시는 듯하다.

좁은문을 가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기준과 평가를 거슬러간다기보다는, 그것과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것들을 발견하고, 집중하고, 계획을 찾아서 그에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 과정에서는 위에서 구구절절 설명했듯이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부딪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단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길을 계속 가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지속가능한,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해주고 계신게 아닐까?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온 여정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신약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기준에 구속되지 않고 산 사도와 제자들이 현실에서의 방향성을 잡아준 메뉴얼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메뉴얼이, 고통스럽고 이 땅에서 일을 하라고 준 메뉴얼이라면 뭔가 말도 안되고 이상하지 않나? 하나님은 분명 이 땅을 창조하시고 보기 좋았다고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분명 쫓겨나기 전에 그 땅에서 행복하셨을텐데. 인간은 성령님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보고 순종할 능력도 없는데, 이 땅에서 일하라고 메뉴얼을 주는 건 말이 안되지 않나?

하나님은 이 땅에 창조원리를, 보기 좋은 것을 회복하길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걸 인간이 자신들의 의지로 해 내기를 원하신다고. 그리고 그게, 우리의 진짜, 지속가능한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