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줘라'
성경에 분명히 있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도 간간히 설교 본문으로 제시되는 말씀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이 가르침을 '그냥 비유로 그 정도로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야. 인간이 어떻게 정말로 그래?'라고 그냥 받아넘긴다.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술은 무조건 마시지 말라고 하고, 담배를 피우면 지옥에 갈 것처럼 말하면서 말이다. 술, 담배를 마음껏 해도 되고 괜찮다고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시키는 것은 철저히 지키려고 하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경시하는 문화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단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이 말씀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는 사람들에게 '상대가 어떤 성장환경에서 자라났는지를 보고, 어떠한 성향을 타고났는지를 봐. 그 사람이 네게 원수가 될만한 짓을 한 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 사람은 엄청나게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일 거야. 네게 발생한 피해를 보지 말고 그 사람 안의 상처를 보고, 그 사람을 사랑해 줘. 그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거야'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원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 내가 보기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지를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이 말씀이 담고 있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타적이어야 한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러한 말씀은 기독교의 사랑은 자신과 다른 믿음이나 신앙을 가진 사람도 포용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진리를 추구함으로서 원리에 대해 배타적인 것과 다른 원리를 진실이라 믿는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것은 분명히 다르며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성경적이지만 후자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주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말씀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들은 해석은, 왼뺨을 때리려면 손바닥으로 때리게 되지만 오른뺨을 때리려면 손등으로 쳐 올려야 하기 때문에 더 굴욕적인 상황도 참고 인내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들었던 의문은 '왼손잡이면 방향이 달라지는데?'라는 것과 '오른손잡이여도 왼손으로 뺨을 칠 수 있는 것 아니야?'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씀도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정당하지 못한 이유로 나를 때리거나 내게 피해를 주더라도, 상대가 그러하게 된 것 이유를 고민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주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피해나 나의 생사와 관련된 피해가 아니라면 기꺼이 입어주라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이 말씀이 갖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은 네 왼뺨을 때리면 목숨을 내어주라고 하지 않지 않나? 그건 상대에게 무조건 당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까지는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주라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참 많이 판단을 하고 다닌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들이 본인들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원수'로 삼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게 맞다는 건 아니지만, 좋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원수로 보인다면, 성경에선 그들도 '사랑'하라고 하셨지 그들에게 지옥에 갈 것이라고 저주하라고 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서는 다른 교회로 가지 않고 우리 교회에 다니고 우리 교회에만 헌금하라는 말씀도 없다. 물론, 교회를 공동체로 여기고 내가 속한 교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성경은 어디에도 거기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어제도, 오늘도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둥,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둥 비판을 넘어 비난과 비아냥거림을 일삼는 모습들을 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저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까지 경험한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생각해 봤나?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상대를 바라보면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까지는 내 힘으로 되지 않더라도, 수용하기는 여전히 힘들더라도 최소한 상대가 '이해'는 되면서 상대를 판단하고 그에 대해서 비아냥 거리지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A는 똑같은 환경에 있었어도 그렇지 않잖아'라고 하는데, 그건 그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것들이 달라서 그렇다. 그리고 그 다름은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아마 당신과 비슷하거나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신보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예시를 들어서 당신을 판단하고 깔아뭉갤 수 있을 텐데, 당신은 그것을 원하는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그런 것이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가능하면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써 사랑까지 해줄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기독교인이, 작은 예수로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이다.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과연 그러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나? 우리가 평생을, 항상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깨어있고 얼마나 순간순간 노력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개하는가?'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한국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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