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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구약의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다.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우셨는데, 자세한 얘기를 여기에 기록으로 남기기는 조금 힘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님께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거둬가달라고 기도하셨단다. 그 이후로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을 떠나지도 못하고 계시지만, 하나님과 매우 친밀하게 지내지도 못하고 계신다. 그런 아버지께 하나님은, 아버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히 두려운 하나님으로 인식되어 있고,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신다고 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보다 성질이 더 날카롭고, 더럽고, 시니컬한 내게 하나님은 이상한 존재였다. 아니,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벌한단 말인가? 인간에게 왜 그렇게 가혹하고, 때때로 거의 다 죽여버린단 말인가? 구약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구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도, 우리가 분노할 대상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하는 것은 구약에 나온 말씀들을 편집해서, 벌하시는 부분들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보기 때문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에 대한 약속을 하신다. 그리고 구약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지켜주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하나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배신하고, 자신들 멋대로 요구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거의 완전히 잊어버린 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신,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지켜주신 이야기다.

이스라엘 민족은 몰살당해 마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럴 법한 짓을 엄청나게 많이 했고, 실제로 그럴 위기에도 자주 처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사람을 붙여주시고 상황을 돌려서 그들을 구해주셨다. 우리가 기억하는 [잔인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모습은 모두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실 필요가 있을 때 나타난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등을 돌릴 때, 하나님은 그들이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벌해야 하는, 쳐내야 하는 자들을 쳐내신다.

그런 하나님의 징벌은, 두려움을 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용하신 회초리였다.

물론,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서 구약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실 때까지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을 지키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언을 성취하셨는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 부분도 중요하고 구약성경의 책들은 그것들이 각각 쓰인 배경, 방식,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갖지만, 평신도인 우리에게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쩌면, 구약성경에서 그런 신실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