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Israel said, "I'm convinced! My son Joseph is still alive. I will go and see him before I die." (창세기 45장 28절)
비혼 얘기도 많지만, 얼마 전에 사유리가 비혼모가 된 이후로 결혼하지 않고 정자를 받아서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얘기가 일부 오간적이 있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비혼모를 허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는 준비된 비혼모들도 있겠지만, 본인은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본인이 감당할 수 없었음을 깨닫는 비혼모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낳고 길러보지 않고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없으니까. 사실 '내 아이'를 '내가 낳아서' 길러야겠다는 것 자체가 아이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정말 아이를 키우는 과정과 가족이 필요하다면 입양을 할 수도 있을텐데 굳이 '내가 낳아서'를 고집하는 것은 '내 것'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비혼모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내 자신에게 물어봤다. '나는 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싶어할까?' 아니, 사람들은 왜 시술을 하고 여성의 몸에 무리를 가하면서까지 아이를 갖고 싶어할까?
사실 나의 냉정한 결론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들이 '정상 가정'이란 프레임을 갖고 있고, 자신은 그런 틀 안에 들어가고 싶단 생각을 갖고 있거나 [아기]를 갖고 싶어서, 자신의 욕심과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왜 가져야만 하니?'라고 물어본다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 아이를 가질 자신이 없어'가 아닐까?
그런데 기독교인은 조금 다르다. 오늘 성경 읽을 부분에 창세기 45장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45장에서 야곱은 요셉이 살아있단 얘기를 듣자 본인이 죽기 전에 아들을 봐야겠다면서 기뻐하는 장면이 나왔다. 몇 번이나 읽은 부분이지만 오늘 유독 뭉클해졌는데, 머리로는 그의 감정이 이해가 됐지만 아이가 없는 나는 그 마음이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더라.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야곱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뿐인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것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것도,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더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이를 갖는 것이 더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잘 깨달아 알고,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하면서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아이 덕분에, 아이를 매개로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이젠 지인들 대부분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진 시점에 여러 얘기를 들어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때때로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은 듯하다. 정말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 평균을 따져도 본인의 희생 없이는 아이를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나마 알 수 있는, 심지어 구체적으로 어떤 면이 어떻게 힘들 것이라는 것을 마음으로는 몰라도 머리로는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인들의 SNS를 보면서.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땡깡부리고, 깨어있어야 할 때 자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하라는 것은 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우리의 모습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그러할 때, 짜증이 날때마다 우린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이렇게, 아니 이보다 더 힘들게 했군요...'라면서. 그리고 그 지점에서 하나님께 돌이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이라면 이 아이에게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 그게 성경적인 육아일 것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그 마음을 모른다. 머리로 대충 이렇겠다고 예상은 하지만, 그건 직접 겪어보면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는 것만 안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나는 또한 개판 오분 전으로 행동하는 나를 품어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 또한 온전히 모른다. 그게 엄청난 사랑이란 것은 알지만, 그게 어떤 사랑인지를 절대 알 수 없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은, 최소한 기독교인에게는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기회. 물론, 그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아... 하나님은 이런 애들을 수만, 수억명을 내려다 보고 계시는거구나...'라는 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말씀을 읽는데, 야곱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그것에 화가 났고, 그 생각이 내가 절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에 화가 났다. 물론,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최소한 나보다는 그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고, 난 그 마음을 알 수조차 없는 것 아닌가. 그 때문에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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