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020년 봄, 제주

게하에 묵는 이유

제주에 갈 때는 거의 항상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처음에는 혼자 여행할 때는 게하에 묵는 게 익숙해서이기도 했지만, 도미토리에 숙박하면 하루 25,000원에 조식까지 해결할 수 있어서 게하를 선택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이 때때로 외로웠기에 숙소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술 마시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이번에 묵은 한 게스트하우스의 아침식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디든지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난 잠자리에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같은 방에 낯선 사람과 있으면 잠이 잘 오지 않기도 해서 도미토리는 3-4년 전부터 거의 찾지 않는다. 개인 공간이 확보된 침실 형태가 있는 도미토리가 아닌 이상. 그런데 그러다 보니 하루 숙박비가 최소 4만 원에서 5만 원이 넘어갈 때도 있게 되었는데, 제주에는 다양한 숙소가 많이 생겨서 그 가격이면 화려하진 않아도 적정한 펜션이나 작은 호텔에 묵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처음 만난 사람들과 굳이 왁자지껄 떠들고 술 마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보통 얕은 편인데, 친한 사람들도 일 년에 한 번도 못 볼 때가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여행을 떠나서 모르는 사람들과 그렇게 어울리고 싶진 않았다. 난 그래서 조용히 여행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하를 찾아서 묵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주위에서는 '굳이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필요가 있냐?'라고 묻더라. 우리 어머니만 해도, 다음 달에 아버지와 제주에 가서 묵을 숙소를 알아보시다 내가 숙소에 쓴 비용을 들으시더니 '야 무슨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그렇게 돈을 써? 우린 둘이 묵는데 너보다 싸게 묵는다'라고 하시더라.

내가 여전히 게스트하우스를 고집하는 것은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놀지 않아도 게하에 묵으면 가끔씩 사람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찾는 게하들의 경우 주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기도 한데, 사장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생각보다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없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한 게하에 오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게 되면 파티를 하는 게하들보다 조금 더 깊은 대화가 오간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지인들에게 하지 못하는 말도 할 수 있게 될 때가 있지 않나?

100년 된 돌집을 수리해서 만든 게하. 사진보다 훨씬 감성적이고 어늑하다.

그리고 게하에 묵으면 '숙소'에 묵는다는 느낌보다는 남의 집에 묵는 느낌이 드는 게 난 좋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게하들도 많다. 그래서 난 제주에 갈 때는 숙소를 선택할 때 가능하면 돌집을 최대한 살려서 만든, 조용하고 집 같은 느낌의 숙소를 선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게하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보니, 검색을 하다 그런 느낌의 숙소가 있는 듯하면 일정만 맞으면 꼭 그곳에서 묵게 되기도 하더라.

내겐 그런 게하들에 묵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도 쉼이다. 어떤 이들은 4-5시에 체크인해서 10시에 체크아웃하는 게하들에 대해서 비판을 하던데, 그게 싫으면 연박을 하면 된다. 그리고 제주 게하들의 매력 중 한 가지는 내가 정한 규칙이 아니라 그 주인이 정한 규칙에 따라 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을 즐기는 것. 그래서 난 그에 대한 불만도 별로 없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게 싫으면 그곳에서 숙박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여행 > 2020년 봄, 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컬푸드를 먹어요  (0) 2021.01.22
겨울에는 제주죠  (0) 2021.01.22
제주의 변화들  (0) 2021.01.22
제주의 심야식당  (0) 2021.01.22
내게 제주는 느림이다  (0) 202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