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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0년 봄, 제주

로컬푸드를 먹어요

여행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작지 않다. 이는 '여행'은 내가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나는 재료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먹고 내가 있는 곳에서는 잘 접하지 못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내가 고향집을 떠나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음식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여행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꼭 그런 기준으로 여행 중 음식을 찾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식당, 왠지 바닷가니까 유명할 것 같은 음식, 싱싱할 것 같은 음식을 찾아서 '나 여기 다녀왔다'라고 자랑을 하거나 인증하기 위해 특정 음식이나 식당을 찾는 경우도 많다. 사실 그런 방식으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은 '여행 중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들은 보통 유명해진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다만, 어떤 이들은 사실 그 식당 음식 맛이 다른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예전의 맛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TV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식당을 항상 찾기도 하는데, 이는 여행의 본질과는 조금 동떨어진 행동 패턴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먹은 가시식당의 순대국.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순대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먹었던 가장 제주스러운 음식은, 아직까지는 몸국이나 고사리 해장국이 아닐까 싶다. 그 맛과 질감은 한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특유의 맛이 있어서 제주에 갈 때면 '이번엔 먹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이미 몸국과 고사리 해장국 맛집들은 너무 유명해져서 줄이 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에는 또 지인들이나 온라인에서 적정한 대체재를 찾아가는 편인데, 그런 잘 알려지지 않은 대체재가 되는 식당의 음식도 나름의 특색을 분명히 갖고 있더라. 가격도 보통 착하고.

그래서 난 제주에 가면 '진짜' 로컬푸드는 꼭 먹는다. 잘 모르는 식당이라고 해도 제주 현지 분들이 많이 있으면 일단 들어가 보고, 마트에서 물을 살 때 '이 근처에 어떤 집이 맛있어요?'라고 물어 관광객들이 아닌 제주분들이 자주 가는 집을 찾아가는데 맛으로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사실 제주를 찾는 분들이 워낙 많다 보니 관광객들에게 아직 유명해지지 않은 식당들도 검색을 해보면 누군가는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 식당 이름을 쳐보면 된다. 그러면 후기가 최소 몇 개는 나온다.

이번 여행에선, 지인들의 인스타에서 종종 봤고 이번에 유튜브를 같이 시작한 동생이 추천해 준 가시식당을 찾았다. 들려오는 말은 분명 한국인데, 무슨 말들인지는 알아듣기 힘든 제주 방언이 공간을 채웠고, 두 테이블 정도에는 여행 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제주 분들이었다. 화려하거나 특별나진 않지만 그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 그것으로 난 충분했다.

그리고 숙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마트에 계신 분께 추천받아 간 팥죽 집도 소박하지만 정말 맛있는 팥칼국수를 팔고 있었다. 이효리 씨가 자주 찾았다는 그 집은, 방송이 나왔을 때는 한 때 관광객들로 채워졌겠지만 이젠 제주 분들로 가득 차 있더라. 화개장터에서 팥죽을 팔다 제주로 내려오신 분이 여시고, 지금은 그 따님이 운영하신다는데 가격도 맛도 착한 진정한 맛집이었다.

제주에서 맡죽 맛집을 찾아갈 줄이야! 개인적으로는 이런게 여행의 재미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제주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제주 음식들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중간에 지인들과 만났을 때 회도 먹었고, 돼지고기도 구워 먹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음식들은 맛은 있어도 기억에 오래오래 남지는 않더라. 여행에서 서울로 돌아와서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로컬 맛집들인 경우가 많다. 이번 여행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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