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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0년 봄, 제주

제주의 변화들

돌집을 살려서 만든 게하, '늘작'

몇 년 전에 묵었던 '함피디네 돌집'. 아니, 이름이 바뀌었으니 '늘작'. 이름이 바뀌어서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닐지,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그 공간 자체가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지. 사실 제주에 올 때마다 드는 걱정이긴 하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공간은 그대로일까? 그 풍경은? 그 음식은?

다행히도 '늘작'은 내가 방문했을 당시 사장님께서 그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방문했을 때도 게하의 주인이었던 '함 피디'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 몇 년간 수백, 수천 명의 손님들이 오갔을 것이고 그저 도미토리 숙객 중 한 명이었던 나를 사장님이 기억할 리가 없지만, 난 사장님을 보는 순간 기억이 나더라. '그분이다'. 반갑고, 고마웠다. 첫 숙소부터 뭔가 예전과 많이 달랐다면, 당황했을 것 같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다음날 조식을 먹으면서 사장님과 '변하는 제주'에 대한 얘기를 한참 나눴다. 땅값은 물론이고 게하의 분위기와 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까지도. 나와 또래이신 (숙소에 달려 있는 사업자등록증에서 생년월일을 훔쳐봤...) 사장님과의 대 화답 게 우리 대화는 아주, 매우, 현실적으로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지만, 그 과정에서 사장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도 매우 짧게 들을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해서일까? 대화를 나눌수록 이 사장님이 얼마나 많은 콘텐츠로 차 있는지가 눈 앞을 가리우기 시작했고, 그 덕에 난 5박 6일의 일정 중 첫날부터 일... 생각을 하다가 끝내 숙소를 나오면서는 꼭 책 쓰시라고, 제가 대필이라도 해드릴까냐고 오지랖을 부렸다(?). 정해진 것? 당연히 없다. 로마가 어디 하루 아침에 지어지던가!

늘작의 소박한 아침식사.

그렇다. 제주는 참 많이 변했다. 뜨문뜨문 오는 나도 그게 보이는데, 계속 사는 분들은 그 변화가 얼마나 더 자세히, 많이 보일까? 아니, 어쩌면 오히려 뜨문뜨문 오기 때문에 그 변화들이 내게 더 자세하고 선명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늘어나서 조금만 알려진 식당에도 줄을 서야 하게 된 변화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제주에 오는 이유도, 와서 하는 것들도 달라지고 있음을 구석, 구석에서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카페, 핫플과 식당들이 넘쳐나면서 초창기에 자리 잡은 아담한 가게들도 그 안에서 묻혀간다. 제주의 10년, 5년 전의 핫플레이스와 지금의 핫플레이스 목록을 뽑아보면 그 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테다. 내가 제주를 소유하는 것도 그 안에 사는 것도 아닌데 내가 몽니를 부리는 게 사실 이상할 수 있다. 그런데 또 그게 내가 의지를 갖고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나?

하지만 그런 변화들 속에서의 익숙함을 찾는 재미가 재미라면 또 다른 재미일 수 있다. 그리고 변화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더 풍성해지는 면도 분명 있으니까. 또 다행인 것은 제주는 와보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꽤나 아주 많이 넓어서 그 변화들에 묻히지 않고, 그 변화들을 소화하고 있단 것이다. 아직까지는.

다만, 통제되지 않은 변화들로 인해 본래 존재했던 제주의 아름다움이 사라질까 봐, 그게 두렵고 무섭다. 홍대입구, 가로수길, 합정까지 휩쓸고 간 젠트리피케이션의 바람이 제주까지 먹어버릴까 봐, 그것이 두렵다. 자본주의가 그 자체로 괴물은 아니지만, 인간은 자본주의를 괴물로 만들 수 있고 그래 왔기에 제주도 그리되지 말란 법도 없다. 문제는 제주가 괴물로 변한 자본주의에 먹히게 되면, 지금의 홍대와 강남의 빈 가게들처럼 제주 역시 버려진 텅 빈 섬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제주사람들은 또 한 번, 육지 것들에게 피해만 입게 되는 것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면에서 제주에 유입되는 거주민들이 줄었다는 소식이 반갑고, 제주 제2공항의 건축은 두렵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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