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완주한 걸까?
지금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건 체력적으로 준비되지도 않고, 까미노 위에서 엄청나게 잘 먹지도 않았던 내가 어떻게 까미노를 완주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2013년 3월에 내가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고속열차에 올라 타 생장에 도착할 때 내 상태를 지금 돌아보면 난 절대로 까미노를 완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는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난 까미노 위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포기하고 싶었다는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컨디션'적인 차원에서 까미노에서의 식사, 숙소 등의 여건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매일 잠자리가 바뀌고, 먹는 것도 일부로 기력을 보충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물론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 중에 홍삼포나 엑기스 정도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가장 먼저 버리게 되는 물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방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드는 게 걷는데 도움이 되는 가장 큰 요소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걷고, 또 걷는다. 적으면 10km 중반, 길면 40-50km까지. 길면 40일 전후, 짧아도 20일 이상을 그렇게 걷는다. 전문 등산인이나 도보여행가가 아닌 까미노 이후에 곧바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대부분 사람들이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걷는 걸까? 그리고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까미노에 첫 발을 내밀었던(?) 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까미노에선 벤치만큼 좋은 친구도 없었다 - 2013년 4월.
'육체적 까미노'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우연히 Samos에서 알베르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던 분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스페인 사람으로 프랑스길만 7번 걸었다고 하는데, 그분은 역사적으로 프랑스길 800km를 크게 4구간으로 나뉘고 각 구간별로 영적인 의미가 있다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었다. 그중에 첫 200km는 육체적 까미노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구간은 순례의 여정 중에 자신의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는 과정으로써의 의미를 갖는다. 즉, 그 구간은 누구나 육체적으로 버거운 상황을 견뎌내면서 걷게 되는 구간이란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후에 돌이켜보니 나 역시 200km 정도, 즉 8-9일 정도를 걸은 시점부터 걷는 게 가벼워졌던 기억이 나더라. 그전까지는 사실 걷고 나서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뻗는 건 기본이고 그다음 날도 다리가 아픈 것은 둘째치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진 듯한 느낌이 나서 첫걸음을 내딛는 것조차도 힘들었었다. 그런 상태로 한 시간 정도를 걷고 나면 몸이 걷는 페이스에 적응을 해서 하루 걷기로 마음먹은 거리를 가까스로 가는 게 까미노에서 내 첫 200km였다.
하지만 그러한 육체적인 어려움은, 체력의 문제는 200km를 지나고 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몸이 매일 일어나서 걷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오래 걸으면 발은 아프지만 일어난 다음날 느껴지던 무기력함보다는 걸을 생각에 대한 설렘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는 했다. 보통 8-9일 정도를 매일 20km 이상 걸으면, 인간의 몸은 놀랍게도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가더라.
하루 일정을 마치면 발은 항상 아팠고 잠자리는 때로 불편했다. -2013년 4월
체력보다 힘든 것
그렇다고 해서 까미노를 걸으면서 힘든 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체력이 어느 정도 길러진 상태가 되더라도 까미노에서 힘든 것들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건 대부분 육체적인 것과 상관없는 것인 경우가 많다. 혼자 걷는 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 계속 같이 걷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그 관계에서 맞지 않는 것들이 터져 나온다.
까미노 위에서 진짜 어려움은 이렇듯 '사람'에 대한 부분에서 발생한다. 함께 있어도, 없어도 문제인 존재. 그래서 까미노에서는 사람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내가 까미노에서 걸으면서, 그리고 걸었던 시기를 되돌아보며 내린 결론은 인간은 모두 독립적인 영역도, 함께 자신의 내면을 나눌 사람도 필요하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며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면서 관계만을 중시하지만 사실 인간은 그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존재더라. 우리 인생에서 행복은 결국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의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까미노를 가족이 함께 걷는 경우, 한쪽이 상대를 완전하게 맞춰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두 사람이 때로는 같이, 때로는 따로 걸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인생에서 그렇듯이. 가장 가까운, 혹은 최소한 가까워야 하는 부부라고 해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누구나 그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은 어머님들이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도 본인이 없어진 듯한 느낌 때문이라고 하지 않나? 까미노는 그런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경험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장소다. (같이 걷는 사람과 그만큼 많이 싸울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기도 하다.)
혼자 걷다보면 심심해서 이러고 놀게 되기도 하더라. - 2013년 4월.
더 중요한 것
분명한 것은 까미노를 걷는 과정은 인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지를 고민하고, 일정 부분은 깨닫게 해 준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를 고민하지만 사실 그 고민은 일단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이후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고민 아닌가? 그런데 까미노에서 걷는 과정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루에 샌드위치 하나, cafe con leche 한 잔, 파스타나 라면 한 개 정도와 몸을 누일 수 있는 잠자리만 있으면 인간은 하루에 20km 정도를 걸을 수 있는 존재더라.
그렇다면 그 정도만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을 우리가 갖고 있다면, 우리는 감사할 게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갖고, 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이 깔고 있는 게 많을수록 사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정도만 갖고 누구나 살 수 있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난 기본적으로 살기 위해 먹는 것보다는 먹기 위해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조금 더 풍요와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게 아니겠나? 우리가 국가를 만들고 사회체제와 사회체계를 만든 것은 한 명이라도 더 그러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다만, 우리가 삶에 정말 필요한 물질이 얼마인지를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게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고, 나눌 수 있게 되더라. 그리고 그렇게 돌아보고 나눌 수 있게 되면 그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원해야 하는 수준은 낮아질 수 있게 되더라. 사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세율과 다른 국가들의 세율을 비교하는데, 세율이 낮은 국가 중에는 기부하는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는 한다. 그들이 우리나라보다도 낮은 세율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런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는지...
분명한 것은 까미노는 이러한 '생각'들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데 있다. 그리고 지금 돌아봐도 개인적으로는 내가 어떻게 그 길을 다 걸었는지가 놀랍다. 겨우 그렇게 먹고, 자면서. 까미노에서 난 그 과정 하나, 하나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5년이 지난 지금에도 난 스스로 물질적으로 덜 풍요로워지거나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고 싶을 때 조금은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필요한 최소한으로 살아가고 있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까미노를 걷지 않았다면, 난 훨씬 더 많은 욕심을 부렸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거리가 적혀 있는 표지판은 때때로 큰 힘이 되어줬다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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