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하이킹?
많은 사람들, 아니 대부분 사람들은 '까미노'라는 단어에 '하이킹'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건 프랑스길의 경우 800km에 이르는 거리를 걷는 고난의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얼마 전에 내 노트북 배경화면을 보고 같이 일하는 감독님께서는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했냐?'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사실 다른 하이킹 코스와 까미노가 갖는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면, 난 그건 코스 자체보다는 휴식하는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하이킹 코스들은 하이킹을 하는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그런데 까미노를 걷고 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까미노에서의 경험은 단순히 걸으면서 한 생각들이 갖는 의미를, 경치 좋은 곳에서 하이킹하면서 받는 느낌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건 까미노를 걷는 과정에서 취하는 휴식들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화살표를 보며 걷기만 할 수는 없다 -2013년 3월.
알베르게에서의 쉼
사실 까미노 위에서 쉼은 알베르게에서 가장 많이 이뤄진다. 날씨가 정말 더울 때의 경우 사람들이 대부분 가장 더운 시기를 피하기 위해 새벽부터 걷는다고 들었고, 나처럼 날씨가 선선하거나 눈보라가 치는 계절에 걷는 사람들은 새벽부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3-4시경까지 걷는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알베르게에서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나서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마을이 큰 경우에는 휴식을 알베르게가 아니라 근처에 있는 bar나 cafe에서 취할 때도, 식당에서 식사와 와인으로 휴식을 취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걷기 이후의 쉼'은 대부분 알베르게에서 이뤄졌다. 그 쉼은 걸음을 마친 직후에는 열이 나는 발과 몸을 식히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몇 시간을 걷고 나서 하는 샤워만큼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만약 알베르게 앞에 식료품 가게라도 있다면 샤워를 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 맥주 한 잔을 하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고는 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눈보라를 맞으며 걸었던 날이라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따뜻한 차, Cola Cao, Cafe con leche 한 잔을 두 손에 꼭 쥐고 마시고 있으면 그만큼 평안한 순간이 또 없다 (저건 뭔가 싶으신 분들은 '식사'에 대한 포스팅을 참조해주세요).
역설적이게도 하루 최소 20km에서 많으면 40km까지 걸은 후이기 때문에 알베르게에서의 쉼은 그만큼 더 달콤하다. 그리고 40km를 걸었던 이틀의 경우 내가 침대에 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으로 다가왔는지를 나는 까미노를 건 지 5년도 더 지난 지금도 기억할 정도다. 물론 그런 쉼에 더해서 함께 길을 걸었던, 몇 번 같은 숙소에서 묵었던 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와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으면 그 쉼이 더 풍성해지기는 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그냥 드러누워 있는 그 순간이 까미노를 걸을 때 내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때의 평안함과 안정감이 말이다.
쉴 때는 빨래하는 것조차 즐겁더라 - 2013년 3월.
길 위에서의 쉼
그러한 '완전한 쉼'이 있기 전까지는 당연히 길 위에서 몇 차례의 쉼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걷는데 익숙해지기 전인 처음 200km 동안에 나는 길 한가운데에 주저앉아서 몇 번을 쉬어가고는 했다. 뒤에서 오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말이다. 서울에서는, 아니 한국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이지만 그때는 내가 살기 위해서 바닥에 주저앉아야 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쉴 수 있는 날은 운이 좋은 경우에 속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은 아무리 힘들고 발이 아파도 쉴만한 곳이 나오지 않으면 걸음을 멈출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난 운이 좋게도 날씨가 좋은 날에 길에서 쉴 수 있는 날들은 꽤나 많았다. 그 이후에 다시 일어나서 수 km를 걸어야 하는 것을 알았기에 그 쉼 자체가 가장 행복하거나 평안하다던지 안정감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길 위에서의 쉼이 주는 특유의 자유로움을 난 기억 한다. 그리고 항상 그렇게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내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날씨도, 바람도, 햇살도, 길도, 내가 깔고 앉은 바위도 말이다. 혹시라도 엄청나게 운이 좋게 벤치라도 있는 날은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도 했다.
길 위에서는 그러한 소소한 쉼이 다 감사의 대상이었다. 서울에서, 일상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졌거나 그 순간마저도 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겠지만 까미노 위에서는 그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더라. 만약 그 날 코스의 특성상 쉬어갈 수 있는 마을이 많으면 그 날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마을에 카페 하나를 발견하면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리고 까미노 위에서 내가 쉼을 갖는 동안 항상 가장 놀랐던 것은, 그 짧은 쉼이 내가 다시 수 km를 걸을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이었다. 정말 더 이상 걷지 못할 듯해서 쉬었는데, 주저앉았는데 그 짧은 쉼으로 내 몸에 다시 걸을 수 있는 힘이 충전되는 것을 보며 난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쉴 땐 발을 항상 식혀줘야 했다 -2013년 3월.
산티아고에서의 쉼
이처럼 길을 걷는 과정에서의 쉼은 내가 다시 걸을 힘을 줬다는 의미가 있었다면, 하루의 고민 끝에 피네스 테라로 가지 않고 산티아고에 5일 정도 머물기로 한 나의 결정은 내 안의 것들을 정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의 쉼으로써의 의미를 가졌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그러나 사람들로 붐비는 그 작은 도시에서 나는 홀로 5일간 마무르며 성당을, 그리고 그날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걸어온 까미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까미노에서의 경험이 지금까지 내 안에 이렇게 깊게 심겨 있는 것은 어쩌면 그 5일간의 쉼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만큼은 조금은 사치를 하자는 생각에 난 호텔로 개조된 수도원의 다락방에서 저렴하게 제공되는 1인실을 썼는데, 그렇게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멍하니 5일 간 한 도시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동차로는 빠르면 하루에도 주파할 수 있는 거리를 거의 한 달에 거쳐서 걷는 것은 상대적으로는 느린 행위일지 몰라도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떠한 측면에서는 굉장히 빠른 행위이더라. 그리고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그 5일은,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파리로 돌아가 그곳에서 보낸 며칠은 내게 까미노에서의 한 달은 물론이고 대학원에서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난 까미노를 완주한 이후 곧바로 귀국해서 일상으로 복귀하거나 곧바로 유럽여행을 떠나기보다는 어디에서든지 며칠이라도 잠잠히 머무르면서 생각하고 쉬는 시간을 가질 것을 추천하고 싶다.
산티아고에서의 몇 일 머무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2013년 4월.
인생에서 휴식의 의미
이 모든 과정에서, 까미노가 내게 준 커다란 깨달음 중에 한 가지는 '휴식의 중요성'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휴식보다 일을 엄청나게 강조하지 않나?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번 주에 난 우리나라의 그런 문화가 다른 국가들보다 너무 심한 것을 뼛속 깊게 느끼고 있다. 내가 같이 일하는 counterpart는 대부분이 외국에 있는데, 그들은 이번 주에 공식적으로 회사 업무를 쉬는 경우가 많더라. 그것도 아니라면 휴가를 써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회사들은 이번 주에 agency에 경쟁 PT를 시키고, 일을 더 쏟아붓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가 피로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그런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쉼을 무시하는 사회. 항상 열심히 힘을 내야만 하는 사회. 과연 그런 사회의 끝은 어떠할까? 그렇게 경쟁하고 계속 달리는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게 달리기만 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 어른들의 노년은 어떠한가? 사실 쉬지 않고 그렇게 달리기만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쉬기 위해서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달리는 과정에서 쉬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쉴 줄을 모른다. 그것도 자신들이 왜 달리는지는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말이다. 쉼도, 휴식도 취해 본 사람이 아는 거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언젠가는 떠난다. 그렇다면 이 땅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에 우리는 최대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물론 일을 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휴식이, 쉼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누가 봐도 30대 후반인 나이가 되어보니 그러한 쉼의, 휴식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더라. 이는 물리적으로 체력이 저하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휴식을 취하지 않음으로 인해 본인이 어디로 가는 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그저 계속 달리는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쉼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또 치열하게 사는 삶의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그 치열한 과정이 선물해주는 행복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까미노에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걷지 않았다면 휴식이 그렇게까지 유의미하게 다가왔겠나? 분명한 건 그 치열한 삶을 더 치열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의미 있게 해주는 것도 그 사이에 있는 쉼의, 휴식의 시간들이란 것이다.
우리는 조금 쉬어도 된다. 아니 쉬어가야 한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우리 모두에겐 쉼이 필요하다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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