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신앙과 신학에 대한 글을 쓴 이후 문득,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이 기억났다. 환생과 관련된. 그 문제가 전형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오해를 야기하는, 성경을 읽고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Surviving Death란 다큐를 봤다. 기자가 취재해서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이고, 그 안에 환생에 대해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이건 말이 안되는데...' 싶은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신앙이 아니라 [연구]적인 차원에서 추적이 이뤄진다. 그 다큐에서 20년 간 자신의 이전 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아이들을 연구한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발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아이의 부모인 보수적인 기독교인인 사람은 자신의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이 자신의 신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차인표씨는 최근에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다시 태어나도 신애라씨와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본인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환생을 믿지 않는다며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누가 맞는 것일까?
이 내용은 성경 내용을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그런데, 최소한 내가 지금까지 읽고 파악하고 있는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경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어떤 명확한 정보나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다. 즉, 기독교에서 죽음 이후의 삶은 사실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져 있고, [하나님 나라]라는 어떠한 추상적인 개념과 [구원]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그건 사후의 세계를 의미함과 동시에 사실 현실에서의 삶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게 전적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천국]의 개념과 같은 의미를 갖진 않는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예가 있긴 하지만 그건 예수님께서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부분이지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경은 전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그것이 이 땅, 우리의 현실에서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과 시사점을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곳곳에 사후세계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시사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부분들은 신학적으로 부풀려지거나 돋보기를 들이대어진 면이 많다. 그게 성경의 핵심은 아니다.
물론, 성경은 영적인 세계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귀신, 악한 영, 사탄에 대한 내용이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우리가 육신을 떠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설명은 성경 어디에도 명시적으로 나와있지 않고, 천주교에서 [연옥]이란 개념을 만드는게 가능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성경에서 영적인 세계는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 내에서 주로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적 신앙은 우리가 육체적임과 동시에 영적인 존재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단 것도 전제하고 있다. '기도'라는 것이 그런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사실은 '현재'를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다. [육체적인, 물리적인, physical한,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말이다.
기독교인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전제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죽음 이후의 삶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전제하고 넘어가는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생을 살도록 영적인 존재를 우리를 내게 주어진 몸 안에 가두신, 이 몸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기독교적 신앙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린 이 몸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린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게 사실 [믿음]의 전제가 아닌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내용은 사실 성경 말씀 자체에 기록된 것이라기보다 [신학적 견해]들이거나 썰인 경우,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만들어낸 것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천주교의 연옥이란 개념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대해 사람들이 하도 불안하고, 궁금해 하니까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잘 살게 하기 위한 도구적인 개념일 수 있다.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천국에 간단 개념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사람들이 더 좋은 일, 착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 내가 천주교 신자가 되지 않고 개신교 신자로 남은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그런 인위적인 개념들이 천주교에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는, 성경에서 보여주고 드러내주고 있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믿는다면 그렇게 궁금해 할 이유도, 두려워 할 이유도 없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왜 만드셨고,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 지를 알면, 죽음 이후의 삶이 괴롭거나 고통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순전한 지적 호기심이라면, 그건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잊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을 본인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한 오만함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부분은 내가 알 수 없어. 일단 내게 주어진 이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면서 내 안에 심겨진 계획을 살아내면 돼'라고 생각하고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내면 된다. 우리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아닌가? 그걸 충실하게 살아내는 [청지기적인 삶]이 기독교인의 인생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참고, 덕을 쌓으며 살아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죄송하지만 '저런 바보 같은 생각이 어디에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죽음 이후에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데, 죽음 이후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면 하나님은 이 세상은 왜 만드셨단 말인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위해 이 세상에서 희생을 하게 한다고? 그건 말이 안되지 않나?
그렇다면 나의 쾌락과 욕구를 마음껏 분출시키면서 사는게 똑똑한 것이냐고? 아니다. 이는 그것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통해 지속가능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성경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우리의 현재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게 누리며 살아야 하고, 성령님과 동행할 때 그럴 수 있단 것이다. 우리의 초점이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나를 보내실 때 내 안에 심어놓으신 것]을 찾고, 알아가야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그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경이 발을 딛고 있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읽고, 그에 대한 해석을 공부하고 접하면 된다. 성경의 목적과 범위를 벗어나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 상상력이 주가 된 영역으로 확정되어서도 안되고 될 필요도 없단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내용도 그런 영역에 속한다. [이 땅에서의 삶은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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