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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말할 때와 침묵할 때

예수님과 바울이 당했던, 그들에게 가해졌던 조치와 비난들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예수님과 바울이 자신에게 던져지는 비난과 시선에 직접 대응하지 않는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 최근에 뉴스를 보면서 나 혼자 부글부글 끓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예수님과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흔들림 없이 자신들을 향해 던져지는 억울한 누명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왜 하나, 하나 항변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였을 것이다. 첫 번째는 세상은 원래 그런 곳임을 알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들이 항변한다고 해서 그들이 설득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해서 하실 일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의견을 내고 분노할 필요는 없다. 화가 반사적으로 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꿀 위치에 있지 않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라면,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보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일을 위해 잠잠히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런 일들에 욱하고 목소리를 내는 건,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우린 언제 입을 열어야 하는지 만큼이나, 언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지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말해야 할 때는 오히려 예외적이고,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침묵하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전부다.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는 있는데, 우린 사실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내가 정말 그 일에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면,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런 마음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진심으로 신뢰한다면, 우린 기꺼이 침묵할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하나님 앞에 나가기 전에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건 사실 우리의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된다.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필요할 때는 굉장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