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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3년 봄,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 유랑기_화살표

유일한 기념품

개인적으로 특별히 뭔가를 수집하는데 취미가 없다. 여행을 가도 내가 기억하고 싶은 곳이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편이지 기념품을 사 오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냥 여행도 아니고 앞에서 거창하게 설명했듯이 '순례'를 다니는 마음으로 걸은 까미노를 다녀와서 무슨 기념품을 사겠나? 사실 기념품을 굳이 사지 않아도 까미노를 걷고 나면 걸었다는 인증서와 내가 길을 걸으며 찍은 도장이 있는 여권(?)이 기념품이 되기 대문에 다른 기념품을 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배낭 하나만 가지고 길을 걷고 나서 보면 기념품을 담은 공간조차도 가방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산 기념품이 있었으니, 그건 노란 화살표가 새겨진 남색 후드티였다. 배지도, 열쇠고리도, 모형도 사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간이 지나면 어디에 있는지를 찾기도 힘들어졌지만 후드티를 정말 좋아했던 내게 그 후드티는 '실용적인 기념품'에 해당했다. 그래서 난 큰 망설임 없이 그 후드티를 샀고, 손목 부분이 너덜거리고, 모자 부분에 보푸라기가 일어날 때까지 그 후드티를 입었다. 안에 있는 기모가 다 죽고, 심지어는 노란 화살표 부분이 갈라지기 시작해서 어쩔 수없이 후드티를 버려야 할 때 느꼈던 안타까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수 없이 자주 보이는 노란 화살표 - 2013년 3월.  

왜 화살표인가?

나뿐 아니라 까미노를 걷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란 화살표를 잊지 못할 것이다. '노란 화살표 중독'이라고나 할까? 노란 화살표가 이처럼 중요한 것은 까미노 위에서는 노란 화살표가 유일한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까미노 길을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안내 책자를 갖고 있다고 해도 노란 화살표의 인도하심(?) 없이는 그 누구도 까미노를 완주할 수 없다. 그래서 까미노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면서도 눈만큼은 항상 노란 화살표를 따라 방황(?)하게 되어 있다.  

이 노란 화살표를 만약 놓치기라도 하면, 까미노에서의 시간은 지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이는 까미노 중 상당 부분은 마을도 사람도 없는 자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까미노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거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순례자를 만났을 때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길을 한 번 잘못 들고 그 길을 계속 가게 되면 그 사람의 까미노가 어떻게 될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까미노에서 그럴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적어도 프랑스길에는 노란 화살표들과 표지판이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까미노에서 노란 화살표를 놓치기는 쉽지 않다 -2013년 3월

인생의 화살표에 대하여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는 어떨까? 우리는 어떤 화살표를 보고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사실 까미노에서의 화살표와 인생에서의 화살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까미노를 걷는 모든 사람들은 산티아고라는 공통의 목적지를 갖고 걷지만, 사람들 인생의 목표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까미노에서 노란 화살표를 찾는 것만큼 우리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찾기가 쉽다면, 이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누구나 매우 어렸을 때부터 우리 인생이 나가야 할 화살표를 어느 정도는 타고난단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향, 갖게 되는 관심사, 흥미를 느끼는 영역,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과 대상은 사실 우리가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화살표 들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그러한 화살표가 아닌 다른 획일화된 화살표를 따르라고 대부분 말한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그런 경향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돈, 명예, 사회적 지위, 성공, 경쟁, 승리와 같은 단어들로 세뇌당하고, 모두 그것을 향해 쫓는듯한 느낌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안사람과 결혼. 예전보다는 조금씩 덜해지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마치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지인 것처럼, 우리의 화살표가 그것을 향해야 하는 것처럼 강요하는 분위기가 상당 부분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페인트칠 한 노란색 화살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3월.

까미노에서의 화살표

어떤 이들은 까미노에서의 화살표가 그런 사회적 분위기처럼 한 곳을 향해 가리킨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는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의 방향을 가리킬 뿐, 그것이 그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화살표를 보고 걷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자신의 인생길에서 자신 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까미노에서 경험한다. 그리고 그 화살표를 적용하는 영역도 모두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똑같이 까미노를 걸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화살표가 마음에 남은 형태는 다를 것이다. 

이는 우리 인생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똑같은 국가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그 마음까지, 그리고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삶까지도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야 하며, 그러한 방향은 모두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 방향성이 자신의 것이 맞다면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의 속도는 모두 다르지만 그 화살표를 제대로 따라간다면 누구나 산티아고에 결국 도착하듯이,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소리를 따라 방향을 맞게 설정하고 가고 있다면 그 속도와는 무관하게 언젠가는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서도 과연 그 방향이 정말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인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말이다. 

파리에도 까미노를 가르키는 노란 화살표는 존재한다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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