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추억이 되는 이유는 까미노를 한 달 동안 걷는 과정에서는 인생을 압축해서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200km는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시간은 마치 우리 인생에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처음 200km를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보통 체력적으로는 하루에 30km전후를 걸을 체력이 만들어지는데, 그 이후에는 산을 넘고 허허벌판을 경험할 뿐 아니라 다양한 풍경과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하면서 (이건 시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부딪히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한 번씩 길을 걷는 또 다른 순례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까미노를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그 길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까미노를 7번 걸은 스페인 할아버지가 '너는 까미노가 부른 사람인 듯하다'라는 표현을 쓴 건 그 때문이 아닐까?
물론, 까미노를 걸은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났던 한 사람은 '내가 전세계 각종 하이킹 코스를 갔는데 여기보다 예쁜데 훨씬 많은데 여기가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다'라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까미노를 꼭 가보라고 권하지 않는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까미노를 걷느냐에 따라 까미노는 그 사람 인생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간, 돈과 에너지를 낭비한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까미노 블루에 시달리는(?), 그리고 다시 까미노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란 사실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이 시리즈에 내가 손을 다시 댄 것 또한 지금 내 인생에 쉽지 않은 결정이 눈 앞에 있고, 오후에는 그와 관련된 회의가 있으며, 하필 그날 오전에 지도교수님께서 전화해서 이것저것을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서른 여덟이 되어서도 이러고 있는 내 삶이 원망스럽기도, 버겁기도 하다보니 난 다시 까미노로 눈과 마음을 돌렸다.
그때 내가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 까미노는 이렇듯 여전히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가능하면 내년 초 정도에 다시 까미노에 가고 싶다. 이는 그 기억이 희석되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까미노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이렇듯 강한 흔적을 남겨 놓는다. 내가 까미노를 권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6년 전에 항공료와 파리에서 머무는 5일을 포함해서 총 비용이 300만원 조금 넘게 들었었다. 지금은 비용이 조금 더 들겠지만, 약 1개월 동안 그 비용으로 어딘가를 떠나서 6년이 넘게 내 인생의 지향점을 결정하는데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 여행은 가성비가 꽤나 괜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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