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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3년 봄, 까미노 데 산티아고

Epilogue

꽤나 오랫동안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던 순례자 유랑기를 마칩니다. 중간중간에 고민을 많이 했고, 여러 글을 썼다 지웠습니다. 까미노를 다녀온 지 너무 오래되어서일까요? 글 안에 계속 제가 드러나려고 하더라고요. 아는 척하려고, 내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깨달았는지, 난 이렇게나 걸었다는 식의 자랑을.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많이 돌아봤던 것 같습니다. 마치 까미노를 다시 한번 걷는 것처럼 말이죠.

까미노.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한국 분들이 워낙 많이 걷고 왔으니까요. 한국 사람들이 왜 그렇게 까미노를 많이 방문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진지하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내렸던 결론은 한국이 그만큼 각박하고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것이었습니다. 어딘가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까미노를 찾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에선 어디에 가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시리즈를 쓰면서 수 차례 썼지만 무조건 까미노를 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큰 고민이 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 사이에 뭔가 이뤄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혼란스럽다면 저는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까미노를 찾는 것을 권합니다. 저도 그랬고, 별생각 없이 30대 초반에 찾은 까미노가 30대 후반이 된 지금도 제게 나침판이 되어주고 있으니까요. 

체력을 준비해서, 모든 장비를 준비해서 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이미 까미노를 한 번 다녀왔다고 해도, 무엇을 준비해 가든지 간에 그 길 위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것이란 겁니다. 그래서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 가든지 그 준비가 다 유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씀은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게, 까미노의 매력이고 존재의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까미노도 그러하고, 그 예측 불가능성이 우리의 시선을 바꿔줄 수 있고 인생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니까요.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면 떠나시길 권합니다. 그 결정이 제 인생엔 엄청나게 큰 흔적을 남겼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도 그러하길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이 시리즈를 다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