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연재한 이유
까미노 위에서의 이야기는 지난 글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사실 까미노 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글들보다 본인의 여행기 또는 순례기를 정리한 서적들을 통해서 훨씬 잘 알 수 있다.
나 역시 까미노를 떠난 지 4-5년이 되는 시점에 그대 일어났던 일들을 브런치에서 정리하려는 1차 시도를 했다가 지금의 형태로 뒤집어엎었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까미노를 다녀온 지 시간이 조금 지났다 보니 그때 일어났던 일들 하나, 하나에 감정적으로 몰입해서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몇 편을 쓰다 보니 이건 결국 '내 이야기'이고, 까미노에 이미 다녀오신 분들은 그 글을 읽으며 본인의 추억을 돌이켜 볼 수는 있겠지만 까미노에 다녀오지 않은 분들에겐 그저 남의 여행기에 불과하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까미노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을 가야 할 이유들을 만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까미노가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사실 그런 글은 까미노를 여러 번 다녀왔거나 갓 다녀온 사람들이 아닌, 까미노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camino blue를 경험하고, 까미노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
앞으로 3차례에 걸쳐 까미노에 가야 할 이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경험'의 차원이다. 사실 까미노, 또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는 과정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해 볼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경치 때문이냐고 묻는다면, 가보지는 않았어도 내가 들어본 하이킹 코스들 중에서만 최소 3-4곳은 까미노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까미노에서만 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한 경험은 그 코스가 마을에서 마을로 넘어간다는데 있다. 다른 하이킹 코스들은 보통 자연 속에서 하이커들만을 위해 마련된 숙소 또는 하이커들이 오감으로 인해 생긴 마을에서 숙박을 하지만 까미노에서는 대부분 까미노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을 거쳐가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론 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가 걸었던 3-4월에는 그랬다.) 이는 분명 다른 하이킹 코스에서 하이커들이 관광객으로 대해지는 것과 다른 점이고, 그로 인해 까미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까미노에서는, 최소한 프랑스길에서 만큼은 알베르게에서 알베르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상당한 기간 동안 다시 만나면서 그 관계에서 형성되는 동지애(?)가 있고, 그러한 감정은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쉽지 않다. 까미노보다 훨씬 긴 하이킹 코스들도 있지만, 그 코스들은 대부분 혼자 걷고 지정된 숙소들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형성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까미노 프랑스길의 경우 스페인 북부지역을 가로질러가는데, 프랑스 길이 지나는 지역들은 자연과 생산물들이 다 달라서 각 지역을 넘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자연과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다른 하이킹 루트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이다.
일상에서의 떠남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보다도 난 일상에서 한 달 정도 떠날 수 있다면, 까미노를 찾는 것도 꽤나 괜찮은 일상에서의 떠남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떠나겠다고 할지도. 그것도 한 달 정도 되는 시간을 보내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그런 여행은 한 달 동안 하기보다는 기회가 될 때 휴가를 조금 붙여서 10일씩 한 지역을 더 깊게 보는 게 남는 게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그런 여행은 10일씩 3번 가는 것과 한 번에 30일 가는 것의 효용이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한 달 정도 일상에서 떠날 수 있을 때 해야만 하는 여행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까미노는 다르다. 까미노도 나눠서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까미노는 어떤 루트를 선택하든지 간에 시작점으로 잡히는 지점들에서 산티아고까지 한 번에 가는 것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그래야 그 길 위에서의 경험이 하나로 엮이기 때문이다. 비유를 하자면 30일 동안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가는 것은 단편영화 여러 개를 몰아 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까미노는 장편영화 한 편을 통으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까미노를 여러 번 나눠서 걷는 것은 영화 하나를 여러 번 나눠서 보는 것과 비슷한데, 드라마도 정주행이 주는 특유의 재미와 맛이 있듯이 까미노도 한 길은 한 번에 완주하는 게 그 길 위에서의 경험을 더 풍성하게 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라면, 보통 한 달 정도 시간이 빈다는 것은 이직을 하거나 인생에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기 직전이라는 것을 의미할 텐데, 그럴 때는 번접스럽게 여러 곳을 찍고 다니기보다는 쉬기도 하고 생각도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까미노는 그런 시간을 갖기에 굉장히 좋은 곳이다. 어떤 이들은 800km를 걷는 것이 어떻게 쉬는 것이냐고 하겠지만, 그건 본인이 까미노를 어떻게 걷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 설명했듯이 까미노에서는 처음 200km 정도는 걷는 게 힘들지만 그 이후에는 몸이 걷는 것에 적응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걷는 게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물론 까미노가 아닌 다른 곳들도 그곳만이 선물해 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 있다. 2006년에 뉴욕에서 본 Phantom of the Opera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것만 봐도 분명 그렇다. 분명한 것은 까미노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갖고 있단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인생, 종교, 일상 등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상황이라면, 까미노만큼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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