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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묵상-2021년

출애굽기 34-36장 말씀 묵상

They received from Moses all the offerings the Israelites had brought to carry out the work of constructing the sanctuary. And the people continued to bring freewill offerings morning after morning. So all the skilled craftsmen who were doing all the work on the sanctuary left their work and said to Moses, 'The people are bringing more than enough for doing the work the LORD commanded to be done.' (출애굽기 36장 3-5절)

하나님에 그렇게 등을 돌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물질을 가지고 온다. 

이 부분 직전에 있었던, 황금 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 중 무려 3천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발적으로 죽이도록 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됐다. '정녕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요 하나님?'이라는 생각. 그리고 성경은 수많은 학살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이고, 그런 책이 어떻게 거룩한 책이냐고 비판했던 도킨스의 비판이 떠올랐다. 

사실이다. 성경에는, 가끔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살해하는, 학살하는, 때로는 한 번에 세상을 뜨게 만드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왜요, 하나님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건 어쩌면 우리가, 현재의 관점과 가치관,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자. 인간은 2차 산업혁명 때 아이들을 강제로 노동에 동원시킬 정도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우리가 보편적 인권을 얘기한 지는 100년도 되지 않았고, 100년 전만해도 전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을 짐승보다 더 쉽게 살해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수 천년 전에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시기에는 그보다 더했을 것이다. 

그 시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그런 환경과 상황에 익숙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두려움이 외에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이 있었을까? 어떤 현상이 그들이 하나님을 잡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두려움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여기에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그건, 성경은,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이 땅에서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엄청나게 잔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후세계, 이 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는 이 땅과 그 세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우린 알지 못한다. 혹자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앗아가신 이들이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사실 성경은 사후세계에서 지옥과 천국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을 떠난 이후 어떤 세계로, 어떻게 가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게, 팩트다. 

우리는 믿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데는 궁극적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믿고, 하늘과 땅의 원리 사이에서 그렇게 하실만한 reasonable한 이유가 있다고 믿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한다면. 우린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한다. 

그 방법 외에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뀐 모습은, 하나님의 방법이 통했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차원에서 더 중요했을까. 더 맞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