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십과 연애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왜 사랑과 연애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지를 돌이켜보면 스킨십에 대한 부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내가 속했던 집단들이 항상 여자 비율이 높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주로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자라다 보니 여자들의 언어로 수다를 떠는 법에도 익숙해졌으며, 그러다 보니 다른 남자들은 보통 듣지 않을 얘기들을 여사친들에게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한 때는 굉장히 엄격하고 보수적인 소위 말하는 '혼전순결'주의자였다 보니 연애를 할 때는 여자 친구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었다.
연애에 있어서 남녀가 가장 큰 시각의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 스킨십의 영역이다. 남자이다 보니 남자들의 대화에 항상 노출되어 있고, 위에서 설명한 내 주변 환경의 특성상 여자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다 보니 그게 너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남자들의 모임에서 '여자들은 이렇다더라'라고 말을 하면 항상 돌아오는 피드백은 '네가 여자를 얼마나 안다고 그러냐'라던지 '모든 여자들이 그런 건 아니야 네 주위가 보수적인 사람이 많으니까 그런 거지'였다. 여러 여자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을 종합해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지점들을 남자들에게 말을 해도, 남자들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들 안에는 이미 '여자도 스킨십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일 뿐이며, 결국에는 스킨십이 정말 중요해'라는 생각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래서 공개된 공간에 사랑으로 시작해서, 그 위에 쌓아지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런데 일 년 반 동안 사랑과 연애, 결혼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써오다 보니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이는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킨십은 남녀관계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그리고 의사소통하는 방법 중 하나'에 그쳐야 하기 때문에 사실 스킨십은 사랑, 연애, 결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이유가 없다.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그렇단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데 사랑, 연애, 결혼에서 스킨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그것에 대한 남자와 여자들의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스킨십을 사랑을 표현하는 통로로써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욕구 또는 욕정의 발현으로써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서 여자들의 경우 성적으로 대상화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 사귀었으면...'이라던지 '000 기념일이니까...'라는 식으로 남자들이 자신이 사랑한다는 여자에게 스킨십 얘기를 한다는 것을 듣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나마 스킨십을 하기 전에 그러는 것은 여자의 입장에서 거절이라도 할 수 있지, 어떤 남자들은 당연히 상대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특정한 스킨십을 강요한다는 얘기를 듣고 스스로 남자인 게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자는 원래 그래'라던지, 남자들이 말하는 남성성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발언에 불과하다. 이는 사람이 이성이 있다는 것은, 동물보다 나은 면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의 욕구를 제어할 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욕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 논리는 결혼해서 아내가 임신했을 때나 잠자리를 할 수 없을 때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할 수도 있다는 데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데서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나? 정말 남자가 성적 욕구를 제어할 수 없는 존재라면 연인이 없을 때는 그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며, 아내가 신체적으로 잠자리를 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논리를 길게 이어가면 사회적으로 매춘도 허용해야 하고, 성폭행이나 성폭력도 남자가 원래 성적으로 욕구를 제어하기 힘든 존재이기 때문에 우연히 그렇게 튀어나온 것이라고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물론 남자들에게 성적인 욕구가 큰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통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상대에게 특정한 행위를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며, 상대에게 그런 스킨십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여성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을 자신이 할 수 있게 존중받아야 한다. 이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는데서도 드러나고,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정한다는 것은 여성이 스킨십을 어디까지 어떻게 할 지에 대한 것은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법원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고, 그 판례는 강간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유효한 판례인데, 이는 남자가 어떠한 경우에도 여성에게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말이다.
혼전순결에 대한 생각
그렇다면 내가 청교도식으로 엄격하게 모든 것이 통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분명히 아니다. 사실 난 기독교인이지만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혼전순결이라 함은 결혼하기 전에 잠자리를 같이 하면 무엇인가가 더럽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게 결혼을 기준으로 왜 다르게 판단되어야 하나? 그리고 사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굉장히 남성적인 시각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이는 보통 '결혼하기 전에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여자가 순결하다'는 전제하에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표현은 사용되지만 남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혼전순결이라는 표현이 갖는 가장 안 좋은 효과는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남녀 간의 스킨십 전반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보수적이고 거부감을 갖게 만든다는데 있다. 이는 혼전순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 '결혼하기 전까지 허용되는 스킨십'에 대한 선도 제시되어야 하는데 그 기준은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혼전순결이라는 표현을 당연한 것으로 학습당한 사람은 모든 스킨십에 대해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스킨십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다. 왜냐하면 스킨십은 사랑을, 감정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아름다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비단 연인 간에서 뿐 아니라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같이 안아주고, 토닥여주면서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은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나? 그것은 사람의 살과 살이 닿는 것은 상대의 체온이, 그 온기가 그대로 전달되면서 상대에게 마음을 전달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통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남녀 간의 스킨십은 상호 간의 존중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즉, 스킨십은 내 안에 있는 욕구와 욕정을 상대를 도구로 삼아서 마음껏 풀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사와 반응을 존중하면서 이뤄져야 한단 것이다. 그래서 상대가 불편해하는 스킨십은 강요되어서 안되며, 그런 상대의 반응을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특정한 스킨십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사랑일 수 없고, 모든 인간은 상대를 그렇게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상대방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보수적이고 스킨십을 통해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것을 존중해주고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연인관계에서 소위 말하는 '진도'가 사실 화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사실 '진도'라는 표현 자체가 불편하다. 이는 상대를 정복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는 스킨십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진도'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방법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공부를 할 때 '000까지 진도가 나갔다'는 것은 그 영역까지 공부를 마쳤다는 것을 의무하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진도가 000까지 마쳐졌다'는 것은 그 과제를 끝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그렇다면 같은 맥락에서 스킨십의 진도를 논하는 것은 상대와의 의사소통, 그리고 사랑의 표현으로써 스킨십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관계에서 과제를,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스킨십에서 진도를 논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써 폭력적이다.
핵심은 상대방의 의사에 있다
그래서 스킨십에서 핵심은 어떤 종류의 스킨십을 했느냐에 있지 않고, 상대방이 그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느낄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러면 어떤 스킨십을 할 때마다 상대에게 물어봐야 하냐?'라고 묻기도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상대가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 때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말해달라고 상대에게 말을 해주고, 그에 따른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것이 연인 간의 스킨십의 기본일 것이다. 상대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스킨십을 하는건 로맨스가 아니라 폭력이다. 그리고 그 스킨십의 방법과 수준은 상대가 그 시점의 신체적, 심리적, 상황적 상태에 따라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야 우리 이미 끝까지 갔는데 왜 내숭이야'라는 식의 반응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이 있다면, 스킨십을 하는 것보다 상대의 그 불편함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상대가 스킨십을 하려고 하거나, 요구하는데 본인이 그것이 불편하다면 나는 그것을 반드시 표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는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그것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때 자신의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은 자신의 과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의사를 명확하게 했음에도 강요된 것, 그리고 지위를 통해 강제한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이 특히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때의 기억이 그 사람이 그 이후의 경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첫 연애, 혹은 얼마 해보지 않은 연애에서 스킨십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신체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이후에 이성과 연애, 한 걸음 더 나가서 결혼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도 신체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 그리고 그 이후의 만남을 위해서 자신이 불편한 것은 상대에게 표현을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그럴 경우 상대가 떠나면 어쩌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그렇게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당신을 떠날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차피 언젠가는 당신을 떠날 것이다. 스킨십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상대가 응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는 사람이라면, 다른 영역에서도 당신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것을 강요할 수 있고, 그런 관계는 연인관계라고 할 수 없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편하지 않고, 열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도 된다. 아니, 해야 한다. 이는 세상 누구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특정한 행위를 강요할 권리는 갖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그건 남녀관계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게 된다.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
남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것
그리고 스킨십을 하는 과정에서 남자들은 특히 잠자리까지 가는 것에 대해서 여자들이 갖는 인식과 남자들이 갖는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가 들은 얘기들에 의하면 대부분, 아니 내 주위에 있었던 여사친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잠자리를 할 때는 어느 정도는 임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예외도 없었고, 소위 말하는 속궁합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여사친은 물론이고 아직 아이를 가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기혼 여성도 그렇더라. 그렇다면 하물며 경험이 적은 여성들의 마음은 어떻겠나?
이런 얘기를 하면 남자들은 보통 '아니 그러면 말을 하면 되잖아?'라고 할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많은 여자분들은 상대를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 또는 굳이 그런 것을 구차하게 입 밖에 내서 설명하기 싫어서 상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 물론 이는 내가 주위에 있는 여사친들과 대화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경우 경험이 많지 않거나 스킨십에 있어서 두려움이 많은 사람뿐 아니라 낯선 사람과도 잠자리를 쉽게 하는 사람도, 아이를 가질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도 잠자리를 한 이후에 '아이가 들어설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어느 정도의 불편한 마음을 대부분 갖고 있더라. 내가 나눈 대화들에 의하면 말이다. 무지한 남자들은 '생리주기에 따라 잘 맞추면 되잖아'라고 하지만, 생리주기가 완전히 일정한 여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시기를 맞추려 노력해도 아이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방법은 정말로 다양했는데 어떤 이들은 잠자리를 가진 후에 항상 24시간 내에 반드시 구강 피임약을 복용하기도 하더라. 그런데 피임약을 먹는 게 여성의 몸에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는 내가 설명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글을 참고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남녀관계의 스킨십에 대해서 생각하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진도, 욕구, 욕정을 중심으로 해서 스킨십을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스킨십을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여겨야 한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 남자들이 '남자들은 다 그래'라고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 말은 그 자체로 남자들을 이성과 절제력이 없는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혼전순결'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 남녀가 모두 상대에 대한 신뢰 수준이,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책임감이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다면 스킨십을 어디까지 하는지가 무슨 상관이 있겠나? 그리고 두 사람이 정말 사랑의 표현으로써 스킨십을 하고, 서로 그것을 아름답게 받아들인다면 어떤 종류의 스킨십을 하는지 여부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나? 이는 일면 '끝까지 그냥 가도 돼'로 들릴지도 모르고 그런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손만 잡아도 괜찮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혼전순결보다는 누군가가 쓰기 시작한 혼후관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혼후관계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스킨십의 진도나 남녀의 마음 등 때문이 아니다. 그건 잠자리를 갖는 것은 새로운 생명체가 잉태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그 생물학적 부모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니까 그 이후에 그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해도, 그 아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아이를 가질 각오 또는 그 정도의 책임을 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가 생겨서 결혼한 부부들을 봤고, 그 과정에서 아이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을 하는 부부를 봐왔다. 그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는 굉장히 예민한 존재여서 부모가 무심코 한 행동, 말, 반응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난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생기면 책임질 수 마음은 있을 때 끝까지 갖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이 말에 대해서 '잘 조절하면 아이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나도 남자이고, 나 역시 다른 남자들과 같은 욕구가 있는 존재이며, 나 역시 연애할 때 스킨십을 경험해 본 것을 바탕으로 말하자면, 그 마지막 선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사람은 언젠가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하지 않고 달려들게 되는 일이 반드시 생기더라. 그리고 자신의 욕구를 '아이가 생기지 않을 방법과 시기에만' 잠자리를 하도록 이성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남자는 그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꼭 스킨십을 끝까지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된 주장이다.
결국 핵심은 두 사람의 마음에 있다. 그리고 스킨십에 대한 글은 내 브런치에서 더 이상 쓰지 않을 생각이다. 스킨십은 남녀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절대로 전부일 수도 없고, 전부 여서도 안되며, 그 관계의 일부에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스킨십이나 진도가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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