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신뢰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앞의 글에서 '교감'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상대와 교감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까? 연애에서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상대 앞에 꺼내놔야 하기 때문에 교감을 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감을 하는데도 수준과 단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서 처음부터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심해지는데, 이는 우리가 솔직한 마음을 상대 앞에 꺼내놨을 때 그에 대해서 돌아오는 부정적인 피드백들을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하기가 힘들고, 사람들이 사랑을 하기가 힘들다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게 상대 앞에 나의 마음을 상대방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정도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수준이 결정한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깊을수록 속에 있는 얘기를 더 잘, 많이 내놓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연애뿐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 지원을 준비할 때 팀에서는 내 바로 윗 선배이면서 사석에서는 '누나'라고 불렀던 학부 선배에게만 그 얘기를 했었는데, 이는 팀에서 그 선배와 가장 친했고 그 선배를 믿었기 때문이다. 팀의 막내로서 서로 많은 고충을 공유해 왔고 많이 놀러 다니기도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팀에 다른 선배들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그분들은 직장 선배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잘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었을 뿐이다.

이렇듯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신뢰가 중요한데, 연애라고 다를까? 아니, 연애도 사실은 다양한 인간관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연애를 시작할 때 trigger 하는 기폭제로 설레임과 호르몬 작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게 연애의 전부도,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란 것이다. 즉, 도파민의 작용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통상적인 수준 이상의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것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될 수는 없단 것이다. 그리고 남녀관계에 도파민이 반드시 항상 작용해야만 한다면, 평생을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부부들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이걸 굳이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시켜주는 것은 '사랑의 호르몬' 또는 '신뢰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인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는 연인의 관계는 도파민의 작용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것은 옥시토신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연애 초기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과 그 관계가 안정되고 깊어지면서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신뢰는 작은 데서 쌓인다

그러한 신뢰는 함께 한 시간과 작은 경험들에서 쌓인다. 어떤 이들은 관계에서 실수를 하면 큰 선물이나 이벤트로 그 실수를 만회하려고 시도를 하고, 그게 단기적으로는 관계를 회복시켜주지만 그 효과는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연인들 간에 다툼이 있을 때 '내가 그때 잘못해서 이것도 주고, 저것도 해주고 했잖아'라는 말은 단순히 구차하고 치사하며 비겁한 것을 넘어서 관계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그런 말.

두 사람 간의 신뢰는 그런 큰 행동이 아니라 작은 것들을 통해서 형성되며, 그런 작은 것들이 일정 시간 동안 반복되는 패턴으로 드러날 때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면 데이트를 할 때 항상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거나 미리 와서 기다린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항상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수개월, 또는 몇 년 동안 그런 패턴을 보이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신뢰가 형성되고, 그런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이 한두 번 정도 다른 모습을 보여도 그 모습은 그 사람이 지금 일시적으로 처한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고 '이해' 또는 '양해'하고 넘어가지게 된다. 신뢰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서 특정한 모습의 신뢰가 있으면, 그 사람이 실수를 해도 그게 그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순간 그런 모습을 보였을 뿐이라고 넘어가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신뢰는 말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되고 강조될 수 있다. 그런데 말을 통해서 강조되고 확인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이 그것을 말로 강조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강조된다. 예를 들면 자신이 항상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거나 미리 기다리는 것을 스스로 칭찬하면서 '나 정말 좋은 연인 같지 않냐'라고 한다면, 그건 역으로 말해서 본인이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항상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무엇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사람인 것들은 보통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걸 본인 스스로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000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나는 잘 모르겠지?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아?'라는 반응을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그런 사람일 확률이 높단 얘기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 그 사람인 000한 사람이라는 신뢰가 형성되고, 그 영역이 확장되면서 두 사람은 신뢰가 깊어지면서 서로 앞에 내놓는 감정의 깊이도 깊어지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일을 계기로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연인들이 헤어지는 사례들을 깊게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 신뢰가 한 번에 무너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신뢰가 무너진 것은 사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무의식 중에 무너져 가고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그 신뢰의 수준이 매우 낮았던지.

예를 들자면 나는 이별을 한 경우 대부분 아주 작은 다툼이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 그 이별은 그 작은 다툼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이게 함으로 인해서 일어났었다. 나는 보통 그런 현상을 '콩깍지가 떨어져서'라던지, '눈에 비늘이 떨어져서'라는 식의 너무나도 상투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도 상투적인 표현이 쓰이는 이유는 그게 그만큼 적확하기 때문인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렇다. 작은 다툼이 계기가 됐지만, 그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나서 호르몬 작용보다 나의 이성 작용이 앞서기 시작하면서 과거에 그 친구와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영화처럼 머리에 재생되는데, 그 재생된 과정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 인지하지 못했던 말들, 그냥 넘겼던 다툼들이 떠오르면서 상대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아지기 때문에 나는 결국 이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즉, 표면적으로 봤을 때 그 신뢰는 한 번에 무너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관계에서 형성되었던 신뢰에 대해서 내가 의심하게 되고 그 틀로 과거가 다시 해석되면서 그 관계가 깨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게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별 얘기들도 들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라던지 과거에는 그렇게 잘 맞았다고 했으면서 '나랑 맞지 않는데 내가 착각했던 것 같아'라는 식의 얘기를 하면서 헤어지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아서,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지 않아서, 감정이 없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헤어지더라. 우리가 분명히 상대와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이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애기간이 길수록 오랜 기간 동안 힘들어하는 것은 신뢰는 깨어졌지만 감정은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처음부터 솔직해야 하는 이유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두 사람이 처음부터 솔직하고, 본인이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만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처음에는 상대와 연인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무너뜨리면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연애를 하는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노력을 들여서 관계를 시작 및 유지하는 것은 결국 어느 순간엔가 무너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그렇게 노력을 해서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노력했던 지점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 서로 공감하고 신뢰가 형성되면서 다른 방향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시작점에 조금은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특별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가 여기에서 처음부터 솔직하고 할 수 있는 수준의 노력만 하라는 것은 특정한 행위를 하면서 그 사람 앞에서는 웃으면서 돌아서면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거나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들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본인이 그런 노력을 한 후에 혼자 있을 때 지쳐서 자신의 일상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면, 그런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는 그런 생각이 들고, 그렇게 지칠 때까지 노력을 하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그게 무너지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고 사랑이 변했다면서 다투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단기적으로 당장 연애를 하기 위해서, 저 사람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한다면 그걸 굳이 내가 막을 생각은 없다. 특히 20대 초중반까지는 그런 연애를 하는 것이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걸려있는 다른 것들이 많은 상황이라면, 굳이 그런 목적으로 연애를 하는 게 장기적으로 본인의 인생에 어떤 이득이 되는지는 한 번쯤은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하는 것이 꼭 두 사람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 장기적으로 그 관계를 지탱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람들이 연애를 사계절은 해봐야 한다는 말은 아마 그렇게 인위적으로 하는 노력이 1년은 가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렇게 미친 듯이, 누가 봐도 무리인 방식으로 상대가 노력을 하는 게 보인다면, 그 모습이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고 그 모습은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한걸음 물러나서 상대의 일과, 경제적인 수준, 환경을 따져보면 사실 상대방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수준의 노력을 수반하고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지속 가능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을 거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노력을 고맙게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그게 계속 평생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맞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스킨십에만 그치면서 단기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연인 간에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연애를 할 때까지 필요한 신뢰 수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떤 사람들은 한 번 보고도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지만도 다른 사람들은 최소한 수개월을 지켜보지 않으면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신뢰가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연애와 연인이라는 틀에 들어갔는지와는 무관하게, 두 사람의 관계의 신뢰 수준이 높아지고, 신뢰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누구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상대 앞에 내놓을 수 있는 말과 스킨십의 수준 등은 모두 그 신뢰에 달려 있으며 사실 연인 간의 문제는 감정적인 부분보다는 신뢰로 인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연애의 핵심은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강조하는 감정, 외모, 조건이 아닌 신뢰가 아닐까? 신뢰야 말로 어쩌면 두 사람이 계속 함께 하는 데 있어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은 감정적인 이유로 시작할 것이 아니라 '이 사람과 함께라면 계속 싸우더라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면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뢰가 있을 때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떤 이들은 그래서 연애를 오래 하고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두 사람의 의미 있는 신뢰는 연애기간보다 어떤 연애를 했는 지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획일적인 답은 제시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난 얼굴 처음 본지 3개월 만에 결혼해서 수년 째 누구보다 행복한 부부도, 연애를 10년 하고 나서 6개월 안에 이혼한 사람도 봤다. 중요한 것은 양보다 질이다.

'연애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의 풍경_결혼  (0) 2019.12.30
연애의 풍경_이별  (0) 2019.12.30
연애의 풍경_교감  (0) 2019.12.30
연애의 풍경_스킨십  (0) 2019.12.30
연애의 풍경_데이트  (0) 201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