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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대화

연애의 본질

愛 (연애). 그리워할 연, 사랑 애. 사랑이 상대를 나 자신만큼 아끼는 것이라면, 상대에 대한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가 그리워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의 한자는 그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리울 정도로, 상대를 그 정도로 아끼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렇게 아끼기 위해서는 두 사람 간의 친밀감이 필요하고, 두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는 것이 많아야 하며, 서로 공유하는 게 많다는 것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마음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서로에 대해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측면에서의 앎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아가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 않나? 이름, 성별, 고향, 출신학교, 다니는 회사, 종교, 취미, 특기, 생년월일, 직업 정도가 누군가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객관적인' 지식이고, 그 외에 서로에 안다는 생각하는 정보들은 모두 '주관적'이며 '가변적'이다. 누군가는 특정한 영화를 좋아할 수도 있고, 특정한 음식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면 그 취향은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 대해서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우리가 지금 아는 그 사람과 1년, 2년, 3년 후에 그 사람은 다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화이고, 두 번째는 경험이다. 그리고 남녀관계에서 데이트는 이중에 경험에 해당하며 이는 별도의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이는 데이트보다도 대화가 연인관계에 더 기본적인 것, 또는 기초를 형성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과정에서 그 첫걸음은 많은 경우 대화가 아닌가? 상대를 알아가는 첫 번째 경로도 대화이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난 상대가 말이 없는 게 좋아서 만나는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그 역시 상대의 대화하는 패턴이 마음에 들었단 말이 아닐까? 사실, 말이 없다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걸 알려주니 말이다.

우리는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 대화의 사전적 정의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인데, 우선 남자들은 많은 경우에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루에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의 양과 여자의 말의 양은 다르다고,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 남자들은 보통 회사에서 하루에 할 말을 다 하고 와서 집에 오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하지 않나? 그게 천성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가 다 그런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에서 만큼은 최소한 남자들은 지금도 일정 부분 과묵할 것을 강요받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남자들이 대화를 적극적으로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학습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할 줄 모르는 것은 비단 남자만이 아니다. 사전적 정의에서 보이듯이 대화는 이야기를 주고 '받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던지고 그에 대한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연애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건 이런 거야'라고 결정하고, 통보하면서 자신은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통보이자 통지이지 대화가 아니다.

대화를 하는 것은 내가 말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연인과의 대화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두 사람이 50대 50 비율로 말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절대적인 양은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횟수에서만이라도 말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상대가 말을 도저히 하지 않으면 어쩌란 얘긴가?'라고 할지도 모르나, 그건 상대의 대화 페이스가 다른 것일 뿐, 상대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생각이 빨리 정리되는 편이라 그 자리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생각과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넘어가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 문제를 혼자 곱씹어 보고 입 밖으로 꺼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을 기다려주는 시간 또한 대화의 일부에 해당할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사람은 그 기다림에 고마워해 주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연인관계에서는 그렇게 기다려 줄 필요가 있고, 대화를 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그 기다림을 고마워해 줘야 한다. 그 모두가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이니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누구 탓을 하기가 힘들다. 그건 우리나라의 사회. 문화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만약 토론하는 분위기가 있고 상명하복의 문화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화를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사실 대화를 한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통보 혹은 통지를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것이다. 그건 결국 '너는 내 말을 들어'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상명하복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게 아닌가?

대화는 나를 알리고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

그래서 사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도 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대화를 위한 노력은 결국 많은 경우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을 하는 것은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말은 듣는 것만큼이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실 개똥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으라는 식의 말하는 방법만큼 당혹스러운 것도 없지 않나? 그것도 아니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아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그렇게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소소한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갖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건 두 사람의 대화가 그런 소소한 것을 건너뛰고 거대 담론, 인생의 가치 등에 대한 것으로 대번에 넘어가게 되면 두 사람은 무의식 중에 상대가 소소한 면에서 본인에 대한 것을 알 것이라고 전제해 버리고,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서부터 서로의 가치관, 종교관, 인생관이 너무 잘 맞아서 상대가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3번씩 보면서 관계가 급진전되었던 사람과 막상 몇 달이 지나고 나서 별 것도 아닌 것들 때문에 데이트 말미에는 항상 싸우고 헤어졌던 경험이 있다. 돌아보니 우리는 서로가 너무 잘 맞는 면이 있으니 서로의 일상에서의 성향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전제했었더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같이 경험하거나 대화를 통해 공유하지 않는 이상 상대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대화를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하는 말에 상대가 오해를 했다면, 어떤 면이 그런 오해를 야기했는지를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리고 상대가 하는 말을 상대의 입장에서 어떠 의미로써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연인 간의 대화여야 한다. 여기에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무엇을 먹고 누구를 만났는지를 다 알려고 하는 것을 대화라고 생각하면서 '이것 봐, 대화가 이렇게 중요한데 왜 그걸 물어보는 걸 귀찮아하냐'라고 하지는 말자. 그런 것을 일일이 물어보고 알려고 하는 것은 '보고'를 받으려는 것이지 '대화'가 아니니까. 이 지점에 대해서는 이후 포스팅 중에 '신뢰'에 대한 내용에서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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