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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와 군대

나도 남자지만 여성분들 중에 '남혐'에 동참하는 분들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남자들 중에 마초적인 사람들도 있고,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남자들이 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 가부장적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젊은 남자들이 있는 것은 현실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 이전 글들과 앞으로 쓸 글들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동질적이라고 전제하고 남성 전체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남자들에 대해서 반감을 갖는 것은 그나마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런데 사실 '여혐'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단순히 '남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하기엔 그 대가도 너무 크지 않은가? 그렇다면 '여혐'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 시점에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은, 남혐과 여혐은 모두 정당화될 수 없단 것이다. 남자들 중에 여성에 대한 행동으로 비판받고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남성'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혐오감을 표출하는 것도, '여성'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묻지 마 식의 혐오감과 폭력을 표출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한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지양되어야 할, 취해서는 안 되는 입장이다.

그러한 전제 하에 그나마 '여혐'을 설명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남혐은 다른 이유 없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폭력의 대상이 되고,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이라면, 여혐은 반대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 중심에는 군대가 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남녀평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해결되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군대'다. 이 말에 대해 여자분들은 무슨 소리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남자들은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면이 분명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군대 문제가 그렇게 핵심적인 문제라면 왜 그 문제가 대놓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이는 페미니스트들은 그 문제를 회피하고, 남자들은 '남자답지 못하고 쪼잔해 보일까 봐' 그 문제를 대놓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군대는 너무나도 큰 인생의 걸림돌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이제는 2년도 되지 않지 않냐?'라고 말하거나 '이제는 월급도 많이 받지 않냐?'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 말을 직접 들으면 그에 대해 반사적으로 분노하지 않을 남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실제 군 복무 기간이 이제는 2년도 안될지 모르지만 남자들은 가기 전까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군대에 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군 복무를 마친 후에는 만으로 40세까지 민방위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계속 받아야 한다. 남자들은 이렇듯 20대 초반부터 만으로 40이 되기까지 군대라는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것이다.

그 2년이 안 되는 기간이 만약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면 사실 제대 후에 예비군 훈련과 민방위를 가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2년이 되지 않는 기간 중에 최소한 몇 개월에서 길면 1년 전후의 기간은 거의 항상 긴장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된다는데 있다. 부대마다 다르지만 '군기'라는 이름으로 이등병과 일병일 때 가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조치들로 인해 남자들은 깨 있을 때는 온몸의 근육과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운이 좋으면 2-3개월로 그런 생활이 끝나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제대하기 직전까지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서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병장 제대를 한 입장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남자들은 모두 군복무를 하고 싶지 않아하고, 그렇게 때문에 군대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다보니 계급으로 더 아래인 사람들에게 부담이 지워진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생기는 이면에는 상명하복의 계급문화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장교들 중 병사를 몸종 부리듯 부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는 사병들 간의 문화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기간이 남자들에게 남기는 트라우마는 작지 않다. 아들만 둘인 우리 어머니도 최근에 우리 얘기를 듣고 놀랐을 정도로. 그 트라우마는 약하게는 '재입대하는 꿈'으로 나타나는데, 모든 남자들에게 재입대하는 꿈은 가장 고통스러운 꿈에 속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꼭 재입대하는 꿈을 꾸는데, 그때는 꼭 나를 가장 괴롭혔던 선임이 남아있거나 후임들이 내 선임이 되어서 나를 가혹하게 대하는 꿈을 꾸게 되고, 놀라서 벌떡 일어나면 식은땀이 나고 있더라.

2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 뭐 그렇게 고통스럽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없이 '자유형'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는 형벌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상당한 수준의 범죄를 저질렀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악감정을 갖고 수차례 폭행하고 식당 업무를 방해했거나 여자 친구를 성폭행한 정도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집행유예 없이 징역을 2년 사는데, 남자들은 30일 전후의 휴가 외에는 2년간 부대 안에서 자유를 제한받으며 군 복무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월급이 많이 오르지 않았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2019년 기준으로  병장의 월급은 54만 원이고 이등병의 월급은 40만 원 정도다. 그나마 2018년에 88%, 2019년에 33%가 인상되어서 오른 것이고 내가 군 복무했을 시점에는 병장 월급이 34,000원이었다. 너무 많이 올라서 문제가 되었던 현재의 최저임금의 기준으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면 34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유를 박탈당하고 국가에 의무를 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월 54만 원은 충분하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이런 요소들보다 남자들이 군 복무로 인해 잃는 더 큰 것이 있다. 남자들은 1년 반에서 2년 정도 군 복무를 함으로 인해 진로를 바꿀 기회를 한 번 상실하고, 이는 평생직장이 없고 30대 초중반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업계로 커리어를 바꾸기 힘든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절대로 작은 대가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군대 안에서도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않냐고, 고시를 합격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고시를 합격해서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입대 전에 이미 시험을 준비하던 사람들이고, 정말 독한 소수를 제외하면 병장이 되기 전에 군대에서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쓰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우리나라 군대의 현실이 그렇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군 복무는 '국가에 대한 의무는 있는데 권리는 없는' 이상한 제도다. 군 복무한 것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그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진 이후 남자들은 국가에 자신의 젊은 시절의 시간을 할애할 의무는 있는데 그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그 시간은 경력도 되지 않는데,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남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자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상한 군 복무제도는 헌법재판소에 수차례 넘겨졌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18년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으면서도 2010년에 남자들만 군 복무를 하는 법제도에 대해서는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을 한 이유들은 (1) 남자들이 집단으로 여자에 비해 전투에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췄고, (2) 신체적 능력에 기초한 전투적 합성을 객관 하여 비교하는 검사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3)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자의 경우에도 월경이나 임신, 출산 등으로 인한 신체적 특성상 병력자원으로 투입하기에 부담이 큰 점만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면 여성은 병사들보다 더 신체적으로 강인해야 하고 강한 훈련을 받는 직업군인으로 복무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여성이 군인으로 복무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라면 여성이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직업군인들이 있는 것은 어떻게 인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는 것은 이에 대해서 헌법재판소 내부에서도 엄청 고민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 속에 이런 마음을 거의 대부분 갖고 있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것들은 조직에 적응을 못해'라는 말은 사실 이런 마음이 깔려 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남자들이 젊은 시절에 군 복무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와 상처들은 그렇게 쉽게 가시지 않고, 내 경우에는 군 복무 기간에 받았던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원형탈모증의 흔적이 그 부위에 여전히 흰머리가 나는 형태로 남아있다. '여혐'이 20대 남자들에게서 특히 많이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의식하든 못하든 군대에 대한 생각과 스트레스와 생각이 20대의 남자들에게 가장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영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여성도 군 복무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나타난다면, 여성들도 남북이 분단된 시대에 국가의 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주장한다면 남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신체적인 문제 때문이라면 꼭 군 복무는 아니더라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같은 형태의 대체복무제라도 여성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 페미니스트가 나타난다면? 장담컨대 그 사람은 상당수 남자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을 하는 페미니스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 글을 쓰기까지 작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목차에 이 부분을 써 놓고도 한참을 망설였고, 개인적으로는 지난 한 주 동안 이 주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는 남자가 군 복무 얘기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게 공격받을 수 있을지 알고, 나 역시 남자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게 너무 없어 보인단 생각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로 한국에서 산다는 것, 그리고 남녀평등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주제를 건너뛸 수는 없었기 때문에 고민, 고민을 하면서 글을 쓰게 됐다.

이에 대한 반론들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남자들만 군 복무를 하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한 때 제시되었던 '여자들은 애를 낳지 않냐?'는 얘기는 일단 제쳐두자. 그건 같은 논의의 선상에 있지도 않고 요즘 사회에서 아이를 가질지 여부는 완전히 선택에 맡겨져 있는 문제니까.

현 군 복무 제도에 대한 타당한 반론이 있다면 그건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우리는 여성들을 차별하는 남성들이 여성을 차별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들여다보면 우리는 여성들을 차별하는 한국 남성들 중 상당수는 심리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군대]라는 변수를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서 조직을 몰라'라던지 '군생활 안 했으면 고생 얘기는 하지도 마'라는 식의 발언을 하거나 발언은 하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 않고, 그걸 대놓고 인정은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현재 군 복무제도 하에서 남녀가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지는 않단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정적인 반발은 할 수 있어도 명확한 반박은 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것이 못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년도 되지 않는 기간, 남녀가 평등하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하도록 하는 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남녀평등을 향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그게 꼭 군대에 가서 이등병부터 병장까지 다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남녀가 서로에게 당당하게, 반박할 수 없게 평등하게 의무를 진다면 사실 남자들도 못난 생각, 말, 행동으로 차별할 수 없거나 그렇게 차별하는 것이 암묵적으로도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