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대학 편

난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판결문들을 보면 판결을 내리는 분들이 성추행당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그들이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기를 들지를 않는다. 이는 남자들은 '정력'이 강한 게 자랑이고 남자다운 것이라고 여기는데 남자들에게 이뤄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대부분 정력을 둘러싸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남자들의 물건이 크거나 작다는 식의 얘기를 은유적으로, 돌려서 대놓고 할 정도니 남자들이 그게 사실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지할 리가 없고,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다 보니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을 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네도 다 좋으면서 그런 거야'라던지 '내숭이야'라는 것은 그로 인해 나오는 반응이다.

남자들 중에서도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해본 사람은 안다. 그 경험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지를. 군대에서부터 운동을 많이 했고, 몸이 근육이 크게 만들어지는 편이다 보니 난 몸이 두꺼운 편인데, 그래서인지 남녀 모두에게 성희롱을 종종 당했고,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분들께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다. 내가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때 내가 경험했던 모멸감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몸이 두꺼운 사람들은 '힘이 좋게 생겼다'는 식의 얘기는 기본이고 변강쇠냐, 여자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덩치는 저런 사람들이 보통 물건은 작다는 식의 얘기도 드물지 않게 듣게 된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별로 그런 거를 자랑으로 여기는 편도 아니고, 나는 내 힘과 내 능력만 알 뿐이지 다른 것은 모르며, 무엇보다 스킨십을 그렇게 도구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보니 그런 말을 들이 좋게 들린 적은 없고, 그런 얘기는 항상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게 불쾌하게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마치 나를 도구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이상 든 지금이야 누가 그렇게 말하면 '야 이걸 내가 어떻게 보여줄 수도 없고... 내가 좀 세지'라고 능글맞게 넘기곤 하고, 남자들끼리 그런 얘기를 하면 '나이 먹고도 그런 얘기하냐'라던지 반대로 '너는 일어나지도 않지?'라고 상대를 놀리면서 얘기를 돌리겠지만 어렸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들이 내게 그렇게 말하며 내 팔을 만지거나 할 때는 그 자리에서 그 불쾌함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겠어서 그냥 민망해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도 불쾌했고 혐오스러웠다.

그래도 학부시절에는 군대 가기 전에는 서로 그나마 순수한 나이였고, 군대에 다녀오면 학교에 누나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럴 일이 많지는 않았는데, 다른 학교 동아리와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 학교 여자 선배들에게 술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이미 졸업을 한 나보다 나이 많은 상대 학교 여자 선배들이 술이 조금 들어가자 위에서 말한 류의 얘기를 하더니 내 허벅지와 더 안쪽으로 손이 들어오면서 '튼실하네. 단단해.'라면서 내내 내 허벅지를 주물럭 거리더라. 그게 너무 불편해서 화장실을 가는 척 일어나서 다른 테이블로 옮겼지만 그때 그 불쾌함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남자들과 이런 얘기를 하면 '야 그걸 진도를 안 뺐단 말이야!'라는 반응이 적지 않은데, 내게 스킨십은 내가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동물이 아닌 이상 그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내가 거기에서 반응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모든 인간이 그때 그런 것을 원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틀림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다르다고 해서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다. 본인이 전혀 성적으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떠올려보고 그 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그렇게 했다고 치자. 당신의 승진이 그녀에게 달려있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지금처럼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그걸 문제 삼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난 쉽게 그걸 신고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남자가 성희롱이나 성추행당했다'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못났다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고, 그렇지 않더라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속으로 '사내자식이 무슨 여자한테 성추행당했다고 그걸 신고를 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남자다움]은 그렇게 남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성적인 욕구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사람들은 장난치듯 성희롱과 성추행의 범주를 넘나드는데 여성은 그에 대해 신고를 할 경우 처할 불이익과 자신의 평판 때문에 쉽게 알리지 못하고,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이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평판을 받을까 봐 입 밖에도 내지 못한다. 어떤 여자분들은 '남자들은 다 그런 거 좋아하잖아'라며 그렇지 않다는 이들을 점잖은 척한다고 타박을 주기도 하더라. 점잖은 척.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내숭'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서 있는 표현으로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생물학적 특성상 여성들이 성폭력에 더 취약한 건 분명한 사실이고, 성희롱과 성추행에 있어서도 아무래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 보니 마찬가지로 여성이 그 피해자인 빈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개별 구체적인만 놓고 보면 남녀가 피해자인 경우 모두 우리 사회가 그들을 피해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거나 다른 사실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는 점, 피해자들이 그런 것들 때문에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는 점은 똑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여자들은 그래도 동성 간에는 같이 분노하고 위로하고 공감해주지만 남자의 경우 그 경험을 털어놓으면 남녀 모두에게 병신 취급을 받거나 남성성에 대해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단 것이다.이게, 맞는 것일까?

남자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인이 속한 조직의 여자 임원이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고, 대부분 남자들은 상상하기도 싫고 징그럽다고 하더라. 그래도 한 번 상상을 해보자. 그래야 본인의 그러한 욕망이 투영되는 상대의 감정과 느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성희롱과 성추행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라고 해서 그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Essay > 한국에서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업시장과 남자  (0) 2021.02.01
남자, 성희롱을 당하다 - 직장 편  (0) 2021.02.01
남자들의 사춘기  (0) 2021.02.01
남자와 군대  (0) 2021.02.01
남자들의 전공 선택권  (0)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