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언젠가 찾아온다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숨어 있는 주제가 있다. 이별. 사람들은 처음 사랑을 할 때, 연애를 시작할 때, 결혼을 할 때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마도 사실 이별을 생각하면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연애는, 결혼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 과정과 끝에 아픔이, 슬픔이,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망각시킬 정도로 강렬한 무엇이 이끌어야 사랑이, 연애가, 결혼이 가능하기에. 연애와 이별을 거듭하고, 나이가 들면서 솔로부대를 제대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실 이성이 감정을 누르는 빈도가 아주, 매우 많이 늘어난다.
연인이나 부부의 이별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연애하다 사랑하고, 사랑해서 결혼해도 두 사람이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뜨지 않는 이상 사실 이별은 사랑, 연애, 결혼에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아니, 사실 사랑에는 끝이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연애와 결혼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또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관계는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비율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외적인 이유로 연애와 결혼의 끝이 찾아오는 경우보다는 두 사람이 자의반, 타의반 또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별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이별을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이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과 헤어지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또는 '이 사람이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식도 아니라면 '혼자이면 외로울 것 같아서'나 '헤어지면 힘들 것 같아서'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을 나는 꽤, 아니 아주 많이 봐왔다. 지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단적으로 감성적이면서도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내 입장에서는 사실 그런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만큼 미련한 선택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해가 되는 경우의 수가 있다면 그건 아마 환승(?)을 할 때까지 혼자이고 싶지 않은 경우 정도이겠지만, 그런 선택만큼 상대에게 잔인하고 이기적인 선택이 또 있을까?
이별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마음 때문에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미련한 이유는, 그렇게 결정을 미루는 것은 현재의 행복하지 않음과 미래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근거로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헤어지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르잖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나, 내가 여기에서 결정을 한다는 것은 충분히 모든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고민한 후에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런 비판은 내가 전제하는 상황과 완전히 다른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별은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순간적인 감정적 변화로 인해 이별을 하는 것도 끝내야 할 관계임을 알면서 질질 끄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결정일 것이기에.
이별을 해야 하는 관계라는 확신이 섰다면 빨리 이별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후유증 없는 이별은 없기 때문이다. 이별 후에 아무 감정도 없이 무덤덤했거나 오히려 후련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이별 직후에는 괜찮은 것 같더라도 어느 순간엔가 자신이 이별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무너지는 경험을 나도 종종했고, 그런 방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꽤나 자주 봤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무 자르듯이 잘리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와 볼꼴 못 볼꼴을 다 보고 질린 상태에서 이별한 것이 아니라면, 이별 후에 어느 정도의 감정적 아픔은 당연히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와 함께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을 미루는 것은 이별로 인한 아픔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 뒤로 미루는 결정에 불과하다.
만약 '상대가 바뀔지도 모르잖아. 그 면만 아니면 우리는 정말 잘 맞고 좋은 사람인데'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대의 그런 면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상대의 그런 점이 단기간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며, 장기적으로는 바뀔 수도 있지만 그걸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의 그런 면이 현시점에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면 나는 그 관계는 최소한 이 시점에는 정리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래만큼이나 현재도 중요하고, 미래에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현재에 자신의 행복도 중요하기에.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보면 상대의 특정한 면을 지금 이 시점에 감당이 안되어서 이별을 한 경우 몇 달 또는 몇 년이 지나서 두 사람에게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은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 이 말이 너무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말 인연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난 지금의 내가 상대의 그런 면을 품고 갈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지금은 이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
그런데 이별을 하는 과정도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나를 포함한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낸다. 사람들은 문자, 카톡, 메신저 등으로 '툭' 이별 통보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조금 덜 비겁한 경우에는 통화로, 그리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직접 만나서 관계를 정리한다. 그래도 서로 인생의 한 시점에 얼마 동안은 서로를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겼다면, 난 직접 만나서 관계를 잘 정리하는 것이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항상 그렇게 이별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렇게 이별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럴듯하게 포장하자면 상대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지만, 우리 두 사람이 더 만나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만나서 대화를 할 경우 그 확신이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감성적이면서도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나는, 상대를 만났을 때 나의 감성적인 면이 흔들릴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얼굴까지는 보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비겁한 결정이었다. 지금은 후회하는 결정들이었다. 내 욕심으로는 어쨌든 얼마 간 나를 사랑해 준 그 사람들이 그런 내 결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일 것이다. 그런데 나 또한 문자 하나로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고 상대는 갑자기 잠수를 타 버리는 경험도, 전화통화로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멍하니 서 있었던 경험도 있었던 걸 보면 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나만큼 비겁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상대를 정말 사랑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 마지막에 대한 예의도 갖춰주는 게 가장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가 또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분노할 필요도 없다. 문자 한 통을 툭 던져 놓고 잠수를 타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도 그와 비슷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별통보를 한 적이 있었기에 사실 그런 통보를 받았을 때 황당하기는 했어도 상대에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이유와 함께 상대가 그런 식으로 통보를 한 것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그런 사람에게 내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기 때문에 나는 상대의 그런 통보에 분노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의 이별통보 방식에 너무 분노하거나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할 필요가 없다. 그건 그 사람이 최소한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