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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가정

결혼의 결과물, 가정

결혼 뒤에는 가정이 온다. 이는 결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정으로 들어가는 입구란 것을 의미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어떻게 이 사실을 상당한 기간 동안 인지하지 못했는지가 이해되지 않지만,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결혼한 지인들도 대부분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결혼을 결심한 경우는 많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 중 한 명이 도망가는 영화는 영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했고,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신부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식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결혼 이후 삶의 무게, 그리고 이젠 부모님을 떠나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사실이 가슴에 갑자기 와 닿으면 그 부담과 현실에 식장에서 도망칠 수도 있고, 부모님을 보고 눈물이 날 수도 있겠더라.

그렇다. 서로에게 집중해서 알아가기로 결정하는 연애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결혼의 무게는 굉장히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연애는 언제든지 끝낼 수 있지만 결혼은 사회적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과 상대에게 평생을 함께 하나의 가정을 꾸려나가겠다는 약속이기에. 어떤 이들은 애만 없으면 이혼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 이혼은 연애 후의 결별보다 훨씬 어렵다. 이는 결혼을 통해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기도 하지만, 결혼은 두 가정의 부모를 관여시키기 때문이고, 연애와 달리 결혼에는 재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난 주위에서 상대가 간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서지 못한 부부도 봤고, 간통까지는 아니어도 전 이성친구와 이상한 대화를 주고받은 것을 발견하고도 모든 것을 누르고 같이 살아야 했던 부부도 봤으며, 결혼한 후에 이중인격과 의처증의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갈라서지 못하고 있는 부부도 봤다. 그리고 이혼한 사람들 중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내 주위의 경우들을 보면 이혼은 그렇게 쉽게 되지도 않으며, 그 후폭풍은 생각보다 큰 경우가 굉장히 많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결혼에는 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결혼을 하는 것은 이처럼 헤어짐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지만, 그 둘의 더 근본적인 차이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결과에 있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부모와 자녀'관계로 형성되어 있던 가정에서 자녀로 있던 입장에서 '배우자', 아이들이 생기게 되면 '부모'로서의 지위를 갖는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서 기존의 가정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부가 되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은 결혼함으로써 그 가정을 유지하고 이끌어갈 책임을 지면서, 위에서 설명했듯이 헤어지기가 훨씬 힘든 관계를 평생 유지하면서 살아가기로 상대와 지인들에게 하는 것이다.

가정을 꾸려서 독립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이처럼 간단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고 해서 이전에 있는 두 사람 가정의 영향력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사람 가정의 영향력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양가 부모님께서 개입하시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면이, 특히 한국에서는 많이 있지만 그래도 그건 새로운 가정을 꾸린 두 사람이 마음이 잘 맞고 굳게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는(?) 문제다. 그게 쉽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이제부터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점보다는 그게 그나마 쉽단 의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가정을 꾸렸을 때는 그 겉으로 보이는 그 사람만 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이 전부 같이 온다. 그리고 그 경험 중에 상당 부분은 그 사람의 잡안 혹은 가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영향 중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것도 있을 것이다. 이는 본인이 부모님과 가정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의 좋은 면과 나쁜 면, 또는 부모님께서 성장기에 부재한 영향을 모두 받는다. 그래서 두 사람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 그 모든 영향력에다가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경험이 하나의 틀로 들어오게 된다.

신혼이 힘든 이유

내가 결혼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결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비슷한 패턴이 있는데, 그건 신혼 아주 초기에 마냥 좋은 몇 달 정도가 지난 이후에는 엄청난 다툼을 한단 것이다. 이는 연애기간과 상관없이 발생하는 패턴인데, 그 다툼의 강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신혼에 갈등이 전혀 없는 경우를 난 아직까지는 들어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없는 척하다가도 진지하게 얘기를 하다 보면 불평불만이 나오고,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나면 대부분이 결혼은 절대 하지 말라면서 어떤 다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얘기들을 들어보면 대부분 경우에는 누가 절대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다툼은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함으로 인해, 혹은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마치 뭔가 많이 아는 척하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만약 결혼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신혼에는 힘든 시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신혼은 완전히 다른 두 가정과 개인적 경험이 하나의 틀로 들어온 기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부모와는 다르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본인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면들을 그대로 갖고 있다. 부모님에게서 보이는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까지 모두. 하다 못해 말투와 작은 습관들은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의 부모님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그리고 가정사로 인해서 부모님 중에 한 분 또는 두 분 모두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그 영향을 당연히 받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홀어머니나 홀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사람들은 두 부모 중 한 사람의 부재의 영향을 어떤 형태로든지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특징들은 특히 아이를 갖게 될 경우 아이를 대하는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집안'을 보라는 것

그래서 사실 어른들이 말하는 '집안을 봐라'라던지, '성장환경을 봐라'라는 조언이 완전히 틀린 조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맞는 조언도 아니다.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두 사람은 자신의 가정의 영향도 받지만 성장환경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다. 물론 결손가정에서 자라나거나 부모 중 최소 한 사람에게 분노를 가질만한 일을 경험한 사람은 그 무의식의 세계에 좋은 가정을 꾸리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요소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간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의 관계에서 더 많이 드러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모두 그런 부정적인 영향만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환경이 자신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런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스스로 힘든 시간을 겪었음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서 그걸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은 마냥 좋아 보이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보다 훨씬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그 안에서 다시 본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거나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경험했던 힘든 시간들 만큼이나 많은 것을 품어주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가정을 꾸리는 데 있어서 상대의 집안 분위기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상대가 자신의 가정과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지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 가정은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오히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면 꽤나 괜찮아 보이는 집안일 수 있다. 부모님께서 모두 양가에서 공부를 가장 잘 하셨고, 그 시대에 서울에서 괜찮은 대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원에까지 진학하셨으며, 아버지는 대기업에서 정년까지 근무하셨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사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꽤나 괜찮은 집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가정은 완전히 건강하지는 않은 면들이 있었고, 나는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몇 년을 몸부림쳐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부모님의 모습들이 사실은 내 안에도 일부 있었음을 발견했고, 나의 그런 면을 바로잡기 위해서 지금도 스스로와 싸우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집안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부모님의 부족한 면만 물려받았단 것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은 점도 많이 갖고 계시고 난 그 특징들도 물려받았다. 그리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런 식의 문제가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고,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단계는 본인이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구와 가정을 꾸릴 것인가?

이전 글들에서도 설명했지만 난 그래서 결국 관계에서는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못한 점에 대해서 사과하고, 상대가 배려한 것에는 고마워하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화에 속하는 것을 넘어서 그 가정을 유지시켜주는 기둥과 같은 말들이다. 그래서 가정을 꾸릴 때는 그 사람의 그러한 모습들을 최대한 뒤로 물러서서 관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두 사람이 같이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깊게 알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가정은 결국 평생을 함께 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고, 그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사실은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지금 보이는 그 사람의 경제력이 평생 간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실제로 우리 아버지 주위에서도 대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부동산, 치킨가게, 요식업을 하다가 모든 것을 다 잃으신 분들이 40대에서부터 생겨났었다. 그분들과 결혼하신 분들은 결혼한 지 20년도 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보다도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은 일들에서 상대에게서 보이는 모습들일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이 모두 지금 당장 경제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도 책임감이 강하고, 열심히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굶지는 않을 것이고 그 사람이 공감능력까지 있다면 두 사람이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롭지 않아도 서로의 힘든 점들을 같이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보다 가정에 있어서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사람 됨됨이란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가정을 꾸릴 때 '최악의 경우에도 상대와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한번쯤은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을 해서 굳이 가정을 꾸려야 하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싱글인 게 가장 좋다. 자유롭고, 본인 마음대로 하루,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조선시대나 부족사회 때와 같이 혈연인 가족관계가 아니더라도 공동체로 서로를 챙기는 공동체 문화가 남아있다면 굳이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본인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거나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하고 주위에 친구들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10년, 20년 후에 그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상대가 본인의 쉼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경쟁이 치열하고 극도로 개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가정은 어쩌면 개인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쉼터로써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단위의 사회다 (최소한 당위적으로는 분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누구와 가정을 꾸릴지를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신혼기간 동안 다툼은 두 사람이 함께 쉼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결혼을 결정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었듯이 결혼할 때 고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고민해 봤자 어차피 두 가정이 모여서 꾸린 새로운 가정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갈등이 생길 테니까. 그런 고민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만 어느 수준에 가서는 자신의 머리보다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믿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머리가 아닌 다른 감각기관으로도 상대에 대한 것을 느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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