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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일과 소명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한 가지는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란 고민을 대부분 한단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왠지 대기업에 가고 돈을 많이 벌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가야한단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민망한 얘기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고지론적 입장에는 비판적이긴 했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는게, 그렇게 추구하는게 맞을 것 같진 않았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을 때도 난 현장보단 본부에 있고 싶었고, 현장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법대나 의대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은게 마음이 힘든 사람이나 몸이 아픈 사람을 만나면서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과 소명에 대한 부분을 명확히 정리해서 갖고 있던 사람도 아니다. 난 내가 되게 강한 사람이었고, 내 욕구와 욕망에 솔직했다. 단 한 번도 교회에서 그걸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심지어 내가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대언기도도 하고 환상도 보는 가까운 지인이 내 기도를 하면 떠오르는 말씀이라고 준 말씀을 보고 짜증을 냈었다. 내가 왜 말하지 못하는 자의 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부분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고민하고, 에라 모르겠다라고 하다가 결국은 그냥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돈을 따라,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 간다. 그게 맞느냐고 하면, 또 딱히 그렇다고 할수는 없다. 낮은 곳으로 가야한다는 강박에 반대되는게 높은 곳, 좋은 곳,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야한단 고지론인데, 그게 성경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이 시점에 내가 갖고 있는 결론은, 파격적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단 것이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은 명확한 소명을 갖고,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자신이 못 견디는 성향을 갖고 태어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사실 어떤 일을 하든지 크게 상관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일로써의 소명을 강조하는 것은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이라고 하는 건 대부분 경제활동에 해당한다. 돈이 안 벌리는 것만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무직자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일은 생계수단이지 무엇인가를 이룰 목적이 아니다. 일은 이처럼 수단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느냐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이 성경적인 원리에서 가능하면 벗어나 있지 않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일단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그런 전제를 충족시키는 일을 한다면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하고 있는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대하고 있는지에 있다.

그 일 자체가, 그 일의 끝에 있는 결과물과 열매, 목적 이런거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일을 성경적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일들은 성경적으로,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장 밖의 삶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가족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지, 내가 생계를 위해 번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아끼고 관리하는지,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가 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알게 또는 모르게 복음의 씨앗들이 계속 뿌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반드시 무슨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한단 강박은 사실 오만함에서 기인되는 생각이다. 이는 그 생각은 우리가 우리 힘과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힘과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사용해서 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일의 control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성경적인 삶을 살아내야 할 수도 있다. 주류(술)회사나 담배회사에 기독교인이 취업을 하면 안되나? 아니다. 그런 회사는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야 하는 회사다. 들어가서 그 안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면, 술이나 담배에 더 오픈한 접근을 하는 기독교인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사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반감을 덜 가질 것이고, 일적으로 접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담배를 덜 해롭게, 술이 사람들을 덜 잡아먹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성경적이겠나?

하지만 그때도 핵심은 '과정'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하도 일과 성과를 중요시하다보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일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많은 경우 일 자체의 목표나 결과보다 그 과정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이 때로는 과정을 바꾸기도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용을 써서, 과정에서 정당성과 도를 무시해서라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그가 당선된 것 자체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게 되나? 아니, 5살 짜리 어린 아이가 아빠가 준 용돈으로 아빠한테 아이스크림을 사주면 그게 아빠한테 영광이 되나? 그 사람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보다는 과정에서 보인 모습들이 사실 그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신앙과 하나님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결과보다 과정에 핵심이 있다는 것은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물론, 정말 명확한 소명이 주어진 사람들이 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아직까지는, 개인적으로 난 불행하게도 그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난 내가 너무 명확하고, 일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괴팍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데, 지금 일과 소명 이런 고민하는 분들, 정말 하나님께서 끌고 가시는 길이 있는 삶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당신들 엄청나게 힘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확한 일을 시키시려면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과 악한 영향력을 버티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매우 가까워져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그 후에는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도 고통스럽다. 세상과 부딪히고 그 안에서 일적으로도 내 신앙과 마음을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말 명확한 걸 심어놓은게 있는 사람들은, 군대나 전쟁으로 따지면 특전사나 해병대 같은 사람들이다. 그게 멋있다고? 난 과거에도, 지금도 특전사나 해병대가 그다지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하는 희생은 어마어마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성적으로만 생각해보면 특전사와 해병대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에 자신을 엄청나게 달련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유혹을 다 참아야 할 뿐 아니라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그렇게 사는게 개인으로써 무슨, 얼마나 의미가 있나? 그 사람들은 자유가, 방탕함이, 물질적 풍요로움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모르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확한 걸 심어놓은 사람들은, 그게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면서도 그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누리는 은혜도, 하나님을 더 깊게 알게 되는 축복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무게와 어려움들도 많다. 솔직히 말하면, 난 선택할 수 있다면 후방부대가 되겠다. 내가 통역병으로 군대를 간 것도 딱 나의 성향과 맞아떨어진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에 맞고 필요한 것들을 심어주신다. 난 기본적으로 일을 좋아하고, 글을 남들보다 빨리, 많이 쓰며, 내가 지금 하는 일들을 할 때 설레이고, 기쁘고, 즐겁다. 하지만 또 가끔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주, 내가 얼마나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인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날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 것이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아 진짜 그냥 회사원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을 담아서 하나님께 징징댄다.

암튼, 결론은. 대부분 사람들은 일적인 면에서의 소명보단 과정으로써의 소명을 갖고 산단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나쁠 것도 전혀 없다.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그것으로 족하단 것이다. 쉽게 말하지만 사실 그거라고 또 쉽나? 그것도 힘든 것이 현실 아닌가?

우리의 삶은 모두 과정일 뿐이고, 그 과정에서 목표나 일로 설정된 건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지 하나님께서 세팅하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극히 예외에 속하는 사람들 외에 대부분 사람들의 소명은, 일이나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는게 정상이 아닐까?

그리고 일적인 측면에서 소명과 관련하여, 내게 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척하면서 이건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돈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자. 그 길도, 하나님께서 여신 것이고 그 안에 뜻이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은 많지 않고, 반대로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신다. 길이 열렸다면, 그 길은 일단 그 길은 가도 된다고 하나님께서 방치하신 길이 아닌가?

그 길을 따라가고, 하나님 손을 붙들고 있으면, 가는 길에 나의 소명을 알게 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 길이 너무 특이해서 피곤하고, 힘들고, 짜증이 나서 하나님께 매일 투덜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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