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은 선택받은 자라는 것에 몰입하고, 매몰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대인들처럼. 그런데 그건 성경이 전제하고 있는 몇 가지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착각임을 알 수 있다.
일단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라는 점을 살펴보자. 그들에겐 질문 하나만 해도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깨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이걸 부인할 유대인이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시작이라면, 모든 인류의 뿌리는 하나다. 그런 개념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지 태초부터 존재하는 개념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선택받은 자가 될 수 있나? 하나님 눈에는 그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들일 뿐인데.
기독교인들이 선택받았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 그리고 교회로 선택하여 부르신 것이라는 것은 '너희가 더 탁월하고 잘났다'의 의미가 아니다. 선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심어 놓으신 계획이 있다는 것일 뿐이고, 이 땅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놓으신 계획이 있으니, 사실 모든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든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인 것이다.
내게 이 "택하신 자"의 가장 큰 딜레마는 사실 가롯 유다다. 사도행전 1장은 가롯 유다가 한 일이 시편(109편 8절)에 예언되어 있는 일을 성취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가롯 유다 안에 그러한 것을 심어 놓으셨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롯 유다를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께서 그가 예언을 성취하도록 계획하신 것이 아닌가? 그는 구원받은 자일까?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천국, 지옥의 개념을 싫어하지만)천국에 갈까? 내 답은 '모르겠다'이다.
가롯 유다의 사례는 "택하신 자"의 개념이 더 잘나고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단 것을 보여준다. 한 걸음 더 물러나서, 그걸 의미한다고 치자. 그게 본인의 힘과 노력으로 더 우월하고 잘난 것인가? 자신이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마치 본인의 노력 없이, 금수저로 태어나서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본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렇지 않나? 애초에 선택을 받은자라면 그건 본인에게 주어진 것이지 본인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없지 않나?
따라서 본인이 정말로 "특별하게"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그로 인해 겸손해야 정상이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택해 주신 것이니까. 그런데 선택받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로 인해 오만해지고, 사람들을 깔본다. 죄송하지만, 머리가 있고 장식품이 아니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선택받은 자"라는 것은 "책임"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알도록, 만나도록 계획하시고, 안에 그러한 것을 심어 놓으신 것은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고, 삶이 복음이 될 책임, 하나님의 복음이 흘러갈 통로로서의 책임을 지우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그건 자랑의 대상이 아니라, 무겁게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의 의미다. 그걸 인지하고,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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