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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부모 1편

아이가 태어나는 환경의 문제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가정을 꾸린다고 해서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주위에서도 아이를 갖지 않고 두 사람이 살 계획을 갖고 결혼한 사람들도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부모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게 한 가지 있다면, 아이는 가능하면 한 가정 안에서 양육해야 한다는 것 정도. 물론 정말 불의의 일로 어쩔 수 없게 되거나 아이의 생물학적인 부모 중 한 사람의 무책임함으로 인해 아이를 어쩔 수없이 혼자 키워야 하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고, 그때도 그 한 사람이 아이를 정말 사랑으로 양육한다면 그 아이는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 사람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에게 무의식 중에 결핍이나 상처가 발생하는 일들이 생길 수 있기에 나는 '가능하면' 아이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양육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녀 간의 스킨십에서도 아이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은 최대한 낮추는 조치(?)는 반드시 취하거나 스킨십의 수준에 한계를 설정해 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취향, 그 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기도 하는데, 그 이후 만일의 결과까지 책임질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새로운 생명체가 잉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입장

다시 본래 하던 얘기로 돌아가면, 내 주위 또는 방송에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부부들이 말하는 이유는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옛날에는 아무것도 없어도 아이 잘 키웠는데 무슨 소리야?'라는 반박을 어르신들이 하시기도 하지만, 사실 당시에는 모두가 가진 게 없었던 반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는 것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어느 정도 이상 못해주는 부모가 머리로 그러는 게 아이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마음까지 편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한 명만 낳거나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부부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두 번째는 아이를 가지면 개인의 삶을 너무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아이가 없는 입장에서는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이젠 거의 볼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 아이를 갖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지를 느끼게 해 준다. 그뿐인가? 아이를 위해 돈을 써야 하고, 시간도 써야 하며, 내가 가고 싶은 것보다 아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야 하는 게 부모들의 삶이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유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다. 개인의 희생 없이 누군가를 잘 양육할 수는 없다.

세 번째는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나는 이 정도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그러한 생각은 아이를 갖고 키운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무게를 아는 사람은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무게를 알게 되면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네 번째는 이 세상이 너무 험악하고 살만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고통받는 존재를 한 명 더 만들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역시 정말 이해가 되는 생각이다. 모두가 경쟁을 위한 경쟁을 하는 세상에 한 사람을 더 그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때로는 사람보다 돈과 명예가 우선순위에서 위에 올라가는 듯한 세상에 한 명이라도 덜 태어나는 게 실제로 어쩌면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 주장들에 대한 반박

위에서는 내가 마치 위 의견들에 동조하는 듯한 글을 썼지만, 난 개인적으로 위 의견들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위 의견과 입장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아이를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은 사실 본인이 얼마나 본인을 지킬 수 있는지의 문제다. 사실 아이들은 자신이 얼마짜리 유모차에 탔고, 어떤 기저귀를 쓰는 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썼던 게 아이의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물론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다거나, 특정 형태의 기저귀를 써야만 할 경우, 그리고 특정 분유와 이유식만 먹는 경우라면 정말 어쩔 수 없이 돈이 많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아이에게는 돈으로 무엇을 해주느냐보다 부모가 얼마나 사랑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장남이다 보니 별의별 것을 다해줬다고 하는데, 난 그에 대한 기억도 없을 뿐 아니라 그 결과 내가 엄청나게 정서가 건강하기만 한 사람으로 자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쉽게 해주는 것은 그 아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왜곡할 수 있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은 사실 부모가 조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금 피곤하고 힘들 수는 있지만 방법은 분명히 있다.

두 번째로 아이를 가지면 개인의 삶을 너무 많이 포기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위 얘기에 '내가 딱 그래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미리 판단을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마치 뉴욕에는 가보지도 않고 사람이 많고 더럽다고 평가하고, 등산을 하지 않고 등산의 고통만을 말하는 것, 또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맛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나도 아이를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난 내가 어머니께 정말 엄청나게 큰 목소리를 내면서 대든 후에 그 대화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네가 날 이렇게 대해도 내가 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네가 내게 지금까지 준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야'라는 그 말을 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난 그렇게 효자는 아니다. 30대 중후반에 결혼도 못하고, 하고 싶은 일 하겠다고 돈도 거의 모으지 못했으며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그런 내가 부모님께 드린 기쁨이 더 크다면, 그건 내가 좋은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기쁨과 즐거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 주위에서 절대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거나 아들이 생기면 막 키울 것이라던 이들이 아들바보, 딸바보가 되는 것을 보면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는 다른 것과 다른 종류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힘들어도 운동을 하는 건 그 이후에 올 결과가 내게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만약 아이를 양육하는 게 그만큼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면, 부모가 되는 것은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세 번째로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는 말의 경우,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정말 좋은 부모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사실  다음 글에서 설명을 하겠지만, 우리는 아이를 갖기 전에 너무 '우리가 아이를 책임져야 해'라고 필요 이상으로 어깨에 힘을 미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아이들은 부모가 책임지는 측면도 있지만 아이들이 부모를 살게 해주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능수능란하게 잘할 수가 있나? 효리네 민박에서 요가를 전혀 못하던 아이유가 아는 형님에서는 물구나무를 서지 않던가? 자리는 사람을 만들고, 우리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우리 모습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갖게 되면 책임감은 가져야 하지만 과도한 부담감을 너무 가질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네 번째로 이 세상이 너무 험악한 것은 맞다. 하지만 난 그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극단적이고 엉뚱한 질문을 하고 싶어 진다. '그렇게 세상이 험악하고 나쁘기만 하다면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나?'라는 질문을 말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을 낳은 부모가 항상 원망스럽나요?'라는 질문도.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말할 때 비판적이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세상에는 그런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세상은 시선을 어디에 돌리고, 내가 삶을 어떻게 살면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서 정말 아름다울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실 아이가 어떤 세상을 사는지는 사실 그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느냐에 달려있는 문제다. 한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세상을 보는 시선을 잘 키워준다면 그 아이는 이 세상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오히려 이 땅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세상이 험악하고 엉망이기 때문에 이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비겁한 핑계일 뿐이다. 조금 과격해지자면, 세상이 그 정도로 험악하고 엉망이고 싫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에서 빼주기 위해서 사람들을 세상에서 떠나가게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

이렇게 길게 글을 써놨기에 어떤 이들은 '이 사람은 아이를 갖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다만 나는 너무 일반론으로 아이를 갖는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선택할 일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고도 서로가 같이 즐기고 평생을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전제는 '서로가 같이 즐기고 평생을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그런 것이 있는 부부가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며, 신혼생활을 1-2년 정도 하면 단 둘이 새롭게 할 것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는 연애를 오래 할수록 같이 할게 없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결혼을 한 후에도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이를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라'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를 갖는 것이 내가 삶의 이유라고 생각하는 '사랑'을 어른인 부모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아이를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은 아이는 이 땅에서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서 주위에도 그러한 영향을 줄 것이기에 아이를 갖는 것은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아이를 갖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들을 반박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다음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육아, 아이와 가정, 부모가 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 글은 이미 너무 길어진 듯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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