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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풍경

연애의 풍경_부모 2편

부모의 의미

가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며, 아기가 태어나서 일정 연령이 될 때까지는 가정 안에서 모든 영향을 받는다. 특히 만으로 1세에서 3세까지 아기가 했던 경험이 그 아기가 자라서 우울증이 걸릴지 여부를 결정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는 것을 보면 가정은 그만큼 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회에 해당한다. 이는 자신의 가정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으며, 우리가 부모님의 모습들 중에서 존경하는 모습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모습도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인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님의 모습들 중에서 정말 싫어했던 모습이 내 안에도 있음을 때때로 발견하는 과정은 사실 굉장히 힘들었었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은 부인하고 싶을지 몰라도 누구도 부모님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건 소위 말하는 '미러링'을 백지상태인 아기였을 때 우리도 모르게 하기 때문이고, 아기들에게는 '엄마'와 '아빠'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는 사실 완전히 부모 또는 보모의 영향을 받지 않나?

결혼할 때 그 부모의 모습을 보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부모와 그 자녀가 완전히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부모만을 보고 결혼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부모님의 모습과 함께 부모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지를 비교해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배우자, 그리고 부모가 될지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려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난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 자체도 보지만 그 사람의 배경과 가정에 대해서 더 많이 보게 되는 듯하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그런 영향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많이 부담스럽게 말한다면 부모가 되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아기 안에는 그만의 세상이 부모를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무의식 중에 했던 말, 전화로 했던 말을 어느 순간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을 부모들은 꽤나 자주 발견하지 않나? 그 아이 안에 그런 세상은 부모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부모가 형성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세상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아이들은 자신의 세상을 형성해 나간다. 물론 그 영향력은 아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희석이 되지만, 운동을 처음 배울 때 폼을 제대로 배웠는지 여부가 그 이후 적용 동작들을 익히는데 영향을 미치듯이 아이들 역시 자신이 처음 배운 세상이 다른 세상들을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받아들이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처음 배운 폼을 수정하는 게 힘들듯이,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아이가 주는 선물

여기까지의 글을 읽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야... 역시 부모가 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애의 차원에서는 난 그런 부담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부담을 가져야 연인과의 스킨십에 있어서 아기가 최대한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갖는 것을 마냥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긴 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을 뿐 아니라 사실 본인이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인식하고 있다면 아이에게 큰 실수를 할 확률은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아이를 양육할 때 아이에게서 보이는 모습이 자신 안에 있는 모습임을 깨닫고, 받아들임으로써 아이에게 있는 좋지 않은 모습을 지적하고 혼내기보다는 본인이 먼저 바뀌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아이들은 그런 모습에 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부모로서 부족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사람, 그리고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인이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세상에 어차피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너무 비관할 필요도 없고,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자신을 비하할 필요도 없다. 이는 특히 우리의 부족함과 상처는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 동안에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내 주위에 사람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그러한 상처를 회복해 나가고, 아이들을 통해서 진짜 사랑을 배운다. 인간은 누군가를 자신만큼이나 사랑할 능력이 기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만큼은 자신보다 더 아끼는 모습들에서 난 아이를 낳고 양육한다는 것은 아이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워나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세상에 나올 때까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존재를 건강하게 낳기 위해서 먹는 것, 마시는 것을 조절하고, 그것을 조절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과정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맞추는 첫 경험이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아이를 위해서 어느 정도 희생을 하면서, 그리고 그 희생이 쉽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가면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울 때가 많은 듯하다.

그 과정에서 현실의 고단함과 자신이 과거에 꿈꿨던 것들을 포기하게 된 것을 원망하는 시간보다 잠시 고개를 들어서 자신이 아이를 대하면서 아이에게 받는 것을 떠올려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받은 것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늘려간다면 부모는 자신이 잃은 것도 있지만 그 덕분에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며, 사실은 부모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이 받는 존재인지를 보ㅕ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이를 키우면서 '얘만 아니었다면 난 이것저것 이것저것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혹시나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길을 갔다면 그 길에서 또 다른 형태의 고단함이 있었을 것이며, 그 길 위에서 당신은 또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걸 그랬어 인생 뭐 있다고'라며 불평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소유하는 대상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아이가 어렸을 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어 다닐 때까지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자신의 것을 희생하면서 아이를 양육하지만 아이가 걷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를 다르게 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말이다. 학원을 보내고, 아이가 싫다고 하는 것은 강요하고, 쬐끄만한게 뭘 아느냐며 야단치는 모습들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 자주 볼 수 있다.

부모들이 아이를 그렇게 대하는 전제는 딱 한 가지다. '내가 어른이고, 내가 너보다 많은 것을 알아'라는 생각.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많은 부모들은 왜 아이들이 수도 없이 물어보는 '왜?'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걸까? 그리고 설사 현시점에 대해서 부모가 아이들보다 많이 안다고 치자.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사회가 어떠했을지에 대해서도 부모가 아이들보다 과연 더 잘 알까? 부모들은 부모의 시대를 아이들보다 더 잘 알뿐, 아이들의 세상과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세상에 대해서는 부모가 오히려 아이들보다 모르는 게 많지 않을까?

부모가 자신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부모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을 순수하고, 예민하며, 주위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이 부모보다 많은 것을 아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에게 무조건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아이와 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물어보면 그것에 대해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선으로 설명해주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완전하게 이해하면 그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지 않나? 우리가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면, 그것을 무조건 막고 부모의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아이들이 무엇인가의 화려함을 보고 막연하게 하고 싶어 해도 말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 중학교 때 농구를 너무 좋아해서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그렇면 인문계를 다닐 필요가 없다며 체력 훈련부터 하라고 하셔서 일주일 정도 학교에 가지 않고 달리기를 하다가 알아서 꼬리를 내린 적이 있다. 포기를 하더라도, 이처럼 스스로 포기를 해야 그 아이들 마음에 부모에 대한 원망과 앙금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걸 무조건 막기보다 '그걸 선택해서 가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 그리고 저런 노력을 하고 이렇게 먹고살아야 할 거야. 그러니까 이만큼의 노력을 해야 해. 그러면 일단 그 그걸 하기 위해서 이런 노력부터 시작해보자'라는 식의 대화를 해야 한다. 걱정이 되는 지점이 있어서 그에 대한 충고를 해주더라도, 아이들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설명을 하고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있어야 부모의 조언을 귀에 담아서 듣는다. 아이들은 장난감이 아니고 독립된 인격체임을 부모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은 그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있고,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폭발시키면 무엇을 해서든지 먹고는 살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유튜버들이 하는 방송으로 그렇게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을까? 부모가 생각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아이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아이를 스스로를 아끼는 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면 내 행복과 대리만족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좋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게 부모의 역할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의 시작과 끝

가정은, 부모는 사랑의 시작과 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사랑을 배우며, 부모가 되어서 사랑을 완성한다. 물론 누군가를 완전하게 사랑하는, 사랑을 완전하게 실행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이는 누구도 완벽하게 상대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없고, 그 사람의 필요와 마음을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것은 인간의 악한 면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우리 삶의 자신의 관점에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상대에 대해서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인간은 본인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을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면서 본인 안에 있는 상처와 결핍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가 되는 것은 그렇게 본인 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부모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그 과정에서의 결핍을 본인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때로는 더 심하게 물려준다. 이는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게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깊게 심겨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를 용서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고는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부모를 용서하면서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그대로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싶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녀의 입장에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내가 너한테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어'라고 굳이 할 필요도 없다. 이는 사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건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간은 한 번 태어났다면 부모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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