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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 하지 마세요.

몇 년간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서 그래도 잘 버텨왔기에 코로나로 인해 계약할 뻔한 건들이 날아가고 나머지는 다 지연되고 있어도 통장잔고를 까먹으면서 괜찮게 버티고 있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쌓는 단계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지금 당장 돈을 받는 일이 없는 게 일면 다행인 측면도 있었다. 덕분에 새로 시작하는 나만의 일들을 하는 패턴을 익힐 수도 있었으니까.

난 내가 그렇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되어 이번 주에 일을 한 건 계약하기로 하면서야 깨달았다. 사실은 내 안에 불안감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게 함께 일해보자고 하신, 업계에서 20년째 프리랜서로 일하며 단순히 자리 잡은 것을 넘어서 모두가 찾는 사람이 된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난 평생 프리랜서로 살지는 못하겠다는 확신이 말이다. 그럼 목표가 뭐냐고? 그건 다다음 글에서 정리할 예정이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살고 있지만, 사실 난 자발적으로 멋있게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다. 20대 후반에 또래들 중에 최상위에 속하는 연봉을 받는 직장에 있었지만 그 순간, 순간이 고통스러웠고, 변호사의 삶과 업무의 특성도 모르면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면서도 현실과 접점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로스쿨에 갔다가 변호사의 현실을 알고 끊임없이 방황했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장학금과 교수님 연구보조를 하면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니 프리랜서 밖에 할 수 없어서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내 브런치의 [나는 어쩌다 박사가 되었나]라는 시리즈에 정리해 놨다 (다만 그게 작년에 발행한 내용이라 지금 내 상황과 생각이 완전히 업데이트되어 있지는 않다.).

내가 이런 길을 가게 된 것은 결국 내 성질머리 때문이다. 주관이 명확하고, 둔한 면에는 되게 둔하지만 예민한 면에는 엄청 예민해서 엄청 거슬리는 일은 절대 못하는 성질머리.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자주 했던 생각은 '회사원으로 살아지면 좋겠다. 예측가능성이 있는 삶은 꽤나 행복할 수 있는데...'였다. 변호사들의 삶을 보고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널렸지만 의뢰인들에게 완전한 을로 있으면서 새벽까지 일하다 파트너가 되면 회사의 이름을 업고 중견기업 이상의 회사들에 영업을 뛰고, 파트너가 되지 못하면 나와서 본인 사무실을 차려서 중견기업을 포함한 그 이하 기업과 개인들에게 영업을 뛰게 되는 삶. 평생 그런 삶을 살 자신은 없었다. 내 주관이 워낙 명확해서. 

사실 이런 성질 머리 때문에 힘들었고, 작년엔 그로 인해 엄청나게 방황을 했다. 어떻게든 회사에 들어가 정착해보려고도 했었다.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돌아봤지만 나는 그게 안되더라. 말 그대로 은혜로, 또는 너무나 운 좋게도 그때 즈음해서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는 일들이 들어와서 이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어쨌든 이것도 나의 선택이라고 하고,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내가 다른 일을 하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고통의 수준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불평을 길게 썼지만, 사실 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20년을 일해오신 분의 말씀을 듣고 다시 확신이 들었다. 지금부터 쌓아서 프리랜서가 아닌 형태로 내 일을 할 방법을 만들어가야겠다고. 

프리랜서를 하지 말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인 '프리랜서'로 일하는 모든 일은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40대까지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노동집약적으로 일하는 게 힘들어진다. 거기다 프리랜서로 돈을 벌 수 있는 업계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들은 그들과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에너지가 부족해서 일의 결과물이 달라지면 상대는 언제든지 대체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프리랜서 업계들의 현실이다. 프리랜서를 오래 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전문가'가 아닌 '생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그 일을 하면서 버티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프리랜서 일을 프리랜서에 대한 환상이나 자유를 갖고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나락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다. 이는 그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어떤 상황에서든지 버티면서 해야 하는 것이 시간이 갈수록 고통스럽고 버거워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리랜서에게는 그와 함께 내가 이 글 서두에서 말한 것 같은 경제적인 불안정성이 항상 동반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돈도 다 받았는데 5월에 종합소득세를 정산할 때는 잔고가 없어서 당황했다는 어느 프리랜서의 말은 프리랜서들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프리랜서를 하겠다는 다짐은 최대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본인이 정말로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 아니면 다른 길이 없을 때 선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이는 그 두 가지는 그 사람이 가혹한 프리랜서의 현실을 버텨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도 아니라면 본인이 확실하게 강점을 갖고 있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최소한 자신의 생계 이상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일감이나 기반이 있고, 그걸 기반으로 일의 부피와 규모를 늘려갈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프리랜서의 삶을 시작해도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의 노동법이 강력하게 보호해주는 정규직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있는 것은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회사]가 무엇인가? 우리나라 회사들의 문화가 폭력적인 측면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회사는 업무를 쪼개 놓음으로써 한 사람이 특정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큰 규모의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혼자서 살아남지 못했을 사람들이 일을 하고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동법]은 왜 있는가? 노동법은 회사의 폭력성을 억제하기 위해 있는 법으로 회사의 구성원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을 부정하게 박탈당하지 않게 보호해주기 위한 법이다. 현대사회가 선물해 주는 그 혜택을 왜 받지 않겠단 것인가!!!!

생각해보자, 본인이 속한 회사에서 나와 개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시스템이 없다면?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은 야생에서 개인으로 승부하고 먹고살아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물론, 회사원들도 힘들다는 것 안다. 특히 사람을 잘못 만나면 회사원의 일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이는 프리랜서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 일을 주는 사람을 잘 못 만나면 프리랜서도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삶을 살아야하며 숨을 쉬기 위해  여행을 한 번 가고 싶어도 다녀온 후에 일감이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여행을 가는 것도 힘들다. 

회사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 안다. 나도 그랬고 지금 내 지인들을 봐도 그들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프리랜서들도 그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더해서 현재의 불안감도 안고 살아간다. 어떤 게 덜 고통스러울까? 심리치료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일하는, 본인 몸이 안 좋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이상이 있을까 봐, 그걸 아는게 두려워서 건강검진을 받지 않고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많다는 것은 프리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다 하더라도 본인이 멘털이 약하거나 잘 버티는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는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프리랜서들은 불안정한 상황을 버텨내면서 항상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돈을 주시는 갑님들을 대해야 하는데 멘털이 약하다면, 그걸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프리랜서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본인 인생의 그림이, 본인의 장점과 능력이 명확하다면, 본인이 잘 버텨낼 자신이 있다면 프리랜서를 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힘들지 않은 일이나 자리는 없으니까. 본인이 어떤 힘듦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판단을 하면 된다. 

30대의 난 프리랜서로서의 힘듦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내게 잘 맞는다. 어제도 남들이 다 부러워 할 특정 직장에서 일하는 상상을 했다가 거의 경기가 날 정도로 난 조직 안에서 내 생각과 선택에 제약을 받으면서 일하는게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50대에도 프리랜서로서 감당해야 하는 힘듦을 감당할 자신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냐고? 앞에서 말했듯이 그건 다다음글에서 얘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