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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는 때때로 죄인이 된다

프리랜서의 삶은 절대로 안정적이지 않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프리랜서들이 겪는 어려움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논의가 되던 계약이 기약은 없어도 그나마 연기가 되면 다행이고, 취소된 계약들도 수두룩 할 것이다. 아니, 이미 계약된 건들이 취소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는 자연재해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문제 삼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설사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걸 문제 삼을 프리랜서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그걸 문제 삼는 순간 업계에서 계속 일하기가 쉽지 않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프리랜서들은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들에게 죄인이 된다. 결혼을 해서 가장 역할을 하는 프리랜서들은 경제적인 상황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가족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는 회사원 역시 마찬가지지만, 프리랜서의 경우 벌이가 줄어들거나 마땅하지 않을 때는 '해주지 못하는 것'의 범위가 회사원의 그것보다 더 넓을 수밖에 없다. 지금 일과 벌이가 줄어있는 상황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준비해야 하기에 프리랜서들은 항상 본인 벌이보다 더 아끼면서 살아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또는 못한 프리랜서들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사실이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프리랜서들과 달리 미혼인 프리랜서들은 본인의 기본적인 생활만 책임지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벌이가 조금 줄어도 밀려드는 부담감이 가장인 프리랜서들보다는 확실히 적다. 

그렇다고 해서 미혼인 프리랜서의 삶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기혼자와 미혼자를 비교하는 건 공평하지 않은 듯하고, 비교를 하려면 프리랜서가 아닌 미혼자와 회사원인 미혼자를 비교해야 할 텐데 프리랜서인 미혼자는 회사원인 미혼자보다 여러 면에서 가족에게 죄인이 된다. 그나마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프리랜서인 경우, 생활도 완전히 독립될 수 있는데 서울에서 개인이 그나마 숨통이 트인 상황에서 그나마 약간의 문화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월세, 통신비, 관리비, 보험료 등을 감안했을 때 최소 300 이상은 잡아야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그것도 젊은 프리랜서가 실수령액이 월 300이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하물며 불투명한 미래를 감안하면 프리랜서들은 돈을 모을 수 있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지 않은 미혼인 프리랜서들은 가족들에게 일정 부분을 의지하게 되고, 가족에게 그렇게 죄인이 된다. 

그나마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진짜로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확신이 있는 프리랜서는 그런 상황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결혼 생각이 있는 프리랜서, 특히 여전히 암묵적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남자에게 강제되거나 남자들의 경우 경제력이 강조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남자 프리랜서는 집, 차 등의 외형을 갖추지 않은 이상 결혼은커녕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는 사람들은 프리랜서가 남의 일일 때는 예찬론을 펼치지만 배우자로서 프리랜서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경제적 불안정성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진짜 사람만 보는 평생을 함께 할만한 사람과 만날 기회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조차 구차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프리랜서들은, 여전히 특정한 연령에는 그래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에게 죄인이 된다.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을 하지 못해 내는 존재. 미혼인 프리랜서들은 그런 사회적 편견과 가족들의 시선을 견뎌내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프리랜서들은 미래에 대해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갖고 버틴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지금의 일과 관계를 통해서 일정기간 안에 이런 기초를 만들어서 이렇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고, 자신의 현실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프리랜서들은 그 계획을 붙잡고 하루, 하루를 견뎌낸다. 그런 계획이 없다면 프리랜서들은 한 달도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아니, 버텨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끝은 뻔하다. 이는 계획이 없다면 경험과 경력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ps. 이 글을 쓰고 나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갑님'들께 죄인이 되기도 한다는 글을 쓸까 했으나 이 시리즈 앞에서 이미 '프리랜서는 자발적으로 을이 된다'는 글을 이미 썼기에 생략했습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가끔 의뢰인들에게 죄인이 되기도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문화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로만 평가하고 평가받는, 갑과 을이라는 호칭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계약당사자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사용되는 날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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