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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 내게 맞을까?

본인이 생계를 해결하면서 그런 루트를 만들고 그 루트가 만들어진 후에 그 루트로 가는 건 프리랜서로의 삶이겠지만

자유, 여가, 디지털 노매드와 같은 키워드들이 사람들을 사로잡으면서 프리랜서에 대한 로망을 가진 분들이 아주 적지는 않은 듯하다. 이 시리즈는 그런 분들의 환상을 깨고 싶어서 유난히 프리랜서의 힘든 점과 부정적인 면들을 강조해 온 것도 사실이다. 사실 프리랜서의 장점이나 프리랜서를 할만한 이유는 이미 다들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까. '프리랜서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

체크리스트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1차적인 관문을 통과한단 느낌으로 체크리스트를 갖고 무엇인가가 내게 맞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은 일종의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느낌으로 쓰기로 했다.

첫 번째,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막연하게 프리랜서를 동경하기도 하는 듯하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경제활동을 다양한 주체들과 계약해서 일을 용역 받아서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프리랜서에게 핵심은 '그걸 해서 돈을 벌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큰돈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돈이 아예 안 되는 일, 돈이 될 수 없는 일을 프리랜서랍시고 하는 것은 백수가 혼자 노는 것이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돈이 되어야 한단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루트를 개발할 수 있으면 사실 그 일은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돈이 되는 루트도 없으면서 호기롭게 본인은 그 루트를 만들어 내겠다고 하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분명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스타트업을 하는 것이지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아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일이 scalable 해서 규모가 커질 수 있고 내 경력이 쌓임에 따라 제공되는 경제적 보상이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본인의 가치도 높아 치지 않는 프리랜서는 생활이나 일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쌓이는 것이 없는 소모적인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2-3년까지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평생 그런 식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프리랜서'는 경제활동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돈을 아예 벌지 못하는 사람은 백수지 프리랜서가 아니다.

두 번째,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전제하자. 나는 그 일을 본인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래야 프리랜서로 힘든 순간들도 버티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서 설명했듯이 프리랜서는 회사원과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들에 직면하게 된다. 회사원들의 경우 그때 '안정성'을 붙들고 회사 안에 버틸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자신의 일에 본인이 재미나 흥미를 느끼는 요소가 없다면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버텨내기가 더 힘들다.

일은 일이고,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먹는 것은 항상 어렵다. 예외 없이 항상. 치사하고 더러운 상황에도 직면해야 하고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프리랜서들은 자발적으로 을이 되어야 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버텨내야 자신의 영역에서 자리를 잡고, 슈퍼 을의 수준으로 올라가서 본인이 일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참고, 참고, 참으면서 '대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을 잡아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그래도 이 일을 할 때 다른 일을 할 때 느끼지 못하는 즐겁고, 행복한 면이 있어'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일은 다 힘들다. 힘든 지점이 전혀 없는 방식으로 돈을 벌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지금 감방에 가 있거나 멀지 않은 미래에 갈 확률이 높다. 이는 그런 시도를 하면 할수록 더 과감해지고, 과감해지면 잡힐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번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본인의 일상에서는 예민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본인이 쉽게 번만큼 쉽게 잃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보통 사실이다. 이는 돈을 쉽게 번 사람들은 그만큼 또 쉽게 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힘들지 않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프리랜서의 경우 어떻게 하면 '내가 느끼는 힘듦'을 상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일을 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생계를 이어갈지가 고민의 핵심이어야 한다. 이는 그 요소가 프리랜서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보람이 있는 면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적으로는 번역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데, 번역하는 과정에서 내가 새로운 세계나 내용을 접할 수 있는 번역을 할 때 느끼는 고통과 힘듦은 아무 보람도 못 느끼는 남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느낌인 번역을 할 때보다 훨씬 적더라. 프리랜서의 일이 지속 가능하려면 [하고 싶은 요소]가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 번째, [잘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그 일을 잘할 능력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잘한다는 것이 프리랜서 초반에 꼭 엄청난 전문가여야 한단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내게 지급하고 뭔가를 부탁할 만한 능력'이 핵심이다. 따라서 본인이 특정분야에서 프리랜서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조금 덜 받으면서도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경력과 이력이 쌓이다 보면 본인이 받는 일에 대한 보상이 늘어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업계 물을 흐린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 비용만 들여서 특정한 일을 맡길 사람은 애초에 그런 비용이 아니라면 그 업계에 일을 주지 않았을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게 업계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면도 분명히 있다. (진짜 문제는 사실 높은 몸값을 받아야 하는데 낮춰서 일을 쓸어 담는 사람이지 일을 싸게 주려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상대가 본인보다 잘할 확신이 있지 않은 이상 돈을 주고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일할 정도의 능력도 갖추진 못한 상황이라면 그건 기초와 기본도 없는 상태로, 아무리 그 일을 혼자 해봤자 능력이 그 위에 잘 쌓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최소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본인에게 비용을 지급할만한 능력을 갖춘 영역에서 프리랜서를 시작해야 한다. 이제 배워서 일을 받겠다는 건 너무 나이브한 생각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프리랜서로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도, 프리랜서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세 가지는 프리랜서로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갖췄어도 프리랜서를 하면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 글에서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