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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의 종착지

앞의 글에서와 같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도 프리랜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 떠밀려 프리랜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절반만 사실이고 절반은 거짓말이다. 내가 조금만 스스로를 낮추고 수그릴 줄 아는, 내 색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난 한 때 연봉 순위 5위를 벗어나지 않았던 회사에서 13년 차 회사원이었을 수도 있고, 현실적인 문제를 우선순위에 높게 뒀다면 작은 중소기업의 no.2로 있었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다른 옵션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이 두 가지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난 왜 프리랜서가 되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것을 갖고 그리는 장기적인 그림이 있기 때문이고, 또 운이 좋게, 감사하게도 그 그림에 맞는 일들을 프리랜서로 할 수 있게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프리랜서로 살아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일을 대충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일단 일을 하면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근사치를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내 성향을 알기에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의 글들에서도 썼듯이 난 평생을 프리랜서로 살 생각은 없다. 연구하고 글 쓰는 건 죽을 때까지 할 것이기 때문에 박사학위에 맞는 전공으로 학교에서 부르면 학교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옵션 중에 하나로 밀어놓고 있다.

난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규모 있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 시스템의 형식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면 그게 법인이 되거나 회사가 될 확률이 높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이유는,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규모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앞의 글에서 설명했지만 프리랜서 개인으로, 개인의 노동력으로만 일을 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이고, 우리는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해야 하며, 우리는 모두 노화되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노동으로 뭔가를 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는 개인으로, 전문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적인 패턴이다. 

왜 프리랜서가 하고 싶나?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자유' 아닌가? 그런데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올릴 수 있어야 하고, 프리랜서 개인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S급 연예인처럼 대본이 항상 밀려 들어오고 광고를 몇 개씩 찍지 않는 이상 1-2억을 넘기가 힘들다. 1-2억은 큰돈이지만 우선 완전히 개인이 그렇게 버는 프리랜서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렇게 벌 수 있는 기간도 10년을 넘기기가 힘들다.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회사가 될 수도 있지만, 같은 일을 하거나 상호 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리랜서들 간에 팀을 꾸려서 같이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이면 그들이 하는 일의 규모는 2-3명이 모여서 2-3배가 되는 게 아니라 5배, 10배로 커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입이 생기게 되면 그때 부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어느 정도 이상의 소신을 갖고 할 '자유'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 시스템이 일을 불러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안정성은 확보가 된다.

프리랜서의 종착지, 목표지점은 그러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사업은 법인의 형태로 이뤄지고, 투자를 받고, 물자를 넣어서 최대한 단기간 안에 금전적인 수입을 올리는 게 목표인 반면 프리랜서들은 투자와 물자 대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넣고 개인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랜서들은 기본적으로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사업을 아예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은 애초에 프리랜서를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종착지는 사업 또는 준사 업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다. 사업과 그런 준사 업적인 관계의 핵심은 [사람]이다. 같이 법인을 차릴 경우에 사람이 중요한 것은 사업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은 모두 알 것이고, 그에 대해서는 뉴스나 사례들도 엄청 많으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는 준사 업적인 관계 또는 네트워크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어느 정도 이상의 능력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정말,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하지 못하면, 프리랜서는 언젠가는 일이 끊어지거나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다.  

나는 돈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고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돈이 무엇인가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돈이 왜 중요한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단 것이다. 

돈이 중요한 것은, 돈은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 구속되어 살면 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의 노예가 되어 더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된다. 우리가 돈과 자유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프리랜서를 하는 것은 회사원이나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 살면서 일정한 수준의 돈을 버는 것은 가능하지만, 회사, 특히 우리나라 회사와 조직들은 어지간하면 개인의 자유를 확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 프리랜서 생활의 끝에는, 목표는 자유 함이다. 진정한 자유. 그러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갖춰야 한다. 그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난 자발적으로 현재를 자유롭지 않은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죽기 전에 20-30년 정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소신에 대가가 거의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과정으로써 자유롭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은 감당할만하지 않을까? 다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난 오늘도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낸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