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걸 나누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우리나라에 진보진영은 거의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진보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보수적으로 접근할 문제와 진보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자체를 그렇게 구분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내 목에 칼을 들이밀면서 편을 들라고 한다면, 억지로 선택해야 한다면 난 보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적으로 [혁명]이 더 좋은 세상을 담보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급작스러운 변화는 사회구성원 중 상당수의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혁명]이란 이름 하에 추구되는 변화는 대부분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고, 혁명이란 이름의 변화는 그 변화가 필요한 이유와 과정은 무시한 채 목표만 추구되고, 그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결국 그 목표도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여당이, 국회의 다수당이 항상 거의 혁명에 가까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대통령이 5년 단임제이고,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변화만 불면 국회 의석 구성이 완전히 반대로 바뀌어버리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은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회는 지역별로 교차해가면서 2년에 한 번씩 국회의석 절반에 대한 선거를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그래야 중간 심판이 가능하니까.
대부분 무리수는, 이번 정부뿐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던 정부들의 무리수도 빨리, 많은 것을 바꿔서 본인들의 치적으로 남기려는 욕망 때문에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운하가 그랬고, 지난 정부에서는 5년 내 통일이라는게 그랬다. 이번 정부는... 10년 만에 대권을 손에 쥐고 무려 180석을 차지한 덕분인지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그런 모습이 보이고 있고...
모든게 한 번에 완벽해 질 수 없다. 하루 아침에 뭔가가 나아지진 않는다. 때로는 지금의 부조리를 어느 정도 버티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신뢰를 사면서 그 안에서 잘 살아남고, 그 과정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변화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는 삶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내 군생활에서의 교훈이기도 하다. 내가 복무한 한미연합사에서는 내가 상병이 되기 직전까지 가혹행위가 철두철미하게 기획되고 계산되어서 매일밤 이뤄졌는데, 내가 상병을 단 그 달에 선임이 밖에 그 사실을 찔러서 부대가 뒤집혀졌다. 그때까지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나는 상병을 달자마자 상병이란 이유로 정신교육을 받아야만 했고, 육체적인 가혹행위는 어쩔 수 없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과 마음을 괴롭히는 가혹행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대가 뒤집힌 이후에는 후임들에게 어떤 군기도 잡지 못하게 되다보니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되는데 필요한 조치들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외부에 가혹행위를 찌른 선임은 정말 좋은, 바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화가난 것은, 난 그 당시에도 혁명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이등병 때부터 '상병 꺾이거나 열외(병장이 되면 모든 것에서 열외된다는 의미로 우리 부대에선 짬이 찼다고 여겨지면 열외로 분류하고 불렀다)가 되면 이 문화를 바꾸기 시작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씩, 내 권한을 내려 놓으면서.
외부의 힘을 빌려 부대를 뒤집으니 그 부작용은 작기만하진 않았다. 그런 변화가 악영향을 미친 것 중에 하나는, 가혹행위는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부대일에서 병장이 되고 나면 손을 떼는 수준도 더 강해졌다는데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열외 중에 좋은 사람들은 후임들을 보호하고 책임도 져줬는데, 어느 순간서부턴가 그런 문화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도 어느 순간서부터 내가 쓰레기라 생각했던 선임들처럼 일에서는 손을 놓고 말로 갈구고 있더라. 당시에는 뭔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된 느낌이 있었다. 짬이 없을 때는 가혹행위를 당하고 갓 상병을 다니까 가해자 취급을 받는게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후회 가득하고 부끄럽지만, 어리고, 어리고 어렸던 당시의 나는 그랬었다.
혁명은 이처럼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기게 되는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은 힘을 갖게 되면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짓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나는 혁명이 건강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패턴은 정부나 국회 구성이 바뀌어도 반복될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게 아쉽고 안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 지인들이 껴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기에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들이 현재 내는 목소리와 하는 결정들에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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