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nations will ask: 'Why has the LORD done this to this land? Why this fierce, burning anger?' And the answer will be: 'It is because this people abandoned the covenant of the LORD, the God of their fathers, the covenant he made with them when he brought them out of Egypt. They went off and worshiped other gods and bowed down to them, gods they did not know, gods he had not given them. Therefore the LORD's anger burned against this land, so that he brought on it all the curses written in this book. In furious anger and in great wrath the LORD uprooted them from their land and thrust them into another land, as it is now.' (신명기 29장 24-28절)
신학자들 중에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굉장히 보수적인 신앙의 전통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렸을 적 그들의 신앙이 너무 보수적이고 견고했기 때문이다. 성경무오설에 기반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은 성경을 세세하게 연구하면서 자신이 몰랐던 오류적인 요소들이나 본인의 신앙과 상치되는 지점들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불가지론자가 되기에 이른다.
과도할 정도로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어느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가졌던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실들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그 순간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이건 뭐지? 왜 그렇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책에 쓰여있는 문자들만 볼 것이 아니라 인류역사의 흐름을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성경에서 어떤 부분이 핵심인지, 왜 이런 일이 있었고 그 결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은 그 내용과 형식, 당시 사람들의 지식 수준 등에 비춰봤을 때 누군가가 만들어낸 소설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고, 성경의 말씀들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왜 그런게 필요했고 그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 문자주의가 위험한 것은, 그런 맥락없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들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 중 일부분을 취사선택해서 이건 지켜야 하고 저건 지키면 안되는 것이라고 편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렵지 않게 입증할 수 있다. 구약에는 아내가 하나 이상임을 전제로 하는 내용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건 일부일처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단 것을 의미할까? 만약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어떤 부분에서는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는 반면 다른 부분에서는 이혼을 할 때는 증서를 줘서 보내라고 한다.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인가? 하면 안된단 것인가?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면 발생하는 오류, 모순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주의를 주장하는, 완전한 무오설을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본인이 성경을 편집하고 있단 것을 의미한다. 성경 전체가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그 내용을 '맥락적으로 해석'하고 해석을 통한 시사점을 도출해서 오늘날에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님께서 말과 행동으로 가르치신 삶의 방식과 하나님을 적용하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오늘 묵상한 말씀에서 나오는 '벌하시는 하나님'은, 나도 사실 오늘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벌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사랑]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훈계하는 것이 아이를 미워하고, 싫어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잘되었으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헬스 트레이너들이 운동을 더 가하게 하도록 푸시하는 것이 운동을 해서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함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협박하고 두려워하게 만드신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날 상태였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많이, 자주 배신했는지가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을 떠날 상태였단 것을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그러한 맥락 없이 구약을 읽으면, 하나님은 질투만 하고 쪼잔하며 폭력적인 신이다. 그런 하나님과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의 모순적인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모순적인 면이 있으면, 그걸 맥락적으로 해석하려 해야지 단편적인 것을 갖고 평가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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