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형교회 담임목사였던 사람이 성추행으로 인해 물러나고 나서, 교단에서도 그를 잘라내지 못한 후, 그가 다시 교회를 시작할 때 그는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스스로를 변호했다.
일단 그 말 자체가 얼마나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없는지를 보여주는지는 뒤로 하자.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분노하고, 말씀을 자신 멋대로 왜곡한 것인지도 일단 그냥 그렇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맞는 말이란 생각이 아침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데 들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누군가가 어떤 행위를 하게 될 때까지는 그 성장과정에서 했던 경험이 그를 붙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한 행위의 상당 부분은 그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환경, 가정의 영향이었을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솜방망이 처벌을 해야 한단 것은 아니다. 그건 절대 그 개인을 [처벌]하고 [판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그 사람이 보인 전적에 비춰봤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예상되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자유형]인 징역형을 그런 맥락에서 보자. 사람들은 징역 사는 것을 '그 개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람을 가두고, 근대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개인의 자유까지 공권력으로 침해하면서 그 사람을 고립시키는 것은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쇄살인마를 가둬야 하는 건 다른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절도범이나 강도를 가두는 것도 다른 사람의 신체에 가해를 하거나 재물을 탈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그 가해자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자면,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깨닫고 그 경험을 다시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처벌을 하는 것이라는 예방론에서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일 것이다. 즉, 과거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보호를 위해 범죄자들을 가둔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성추행, 횡령 등을 저지른 자들을 교단에서 잘라내는 것은 [그런 잘못을 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을 왜곡시키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복음을 왜곡하고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의 영향을 성도들이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닐까?
누군가를 판단하기 때문에 처벌하는게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한게 분명하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무고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잘라내고 처벌해야 한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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