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가장 구분하기 힘든 난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교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과 기도가 우선이라고 하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그래도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두 가지 중 하나만 해야된다는 말은 양심적으로 하지 못하겠으니 양극단 중간 어디선가에서 노력과 기도 사이의 비중을 조절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으나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노력을 해야 할 영역과 하나님께 맡길 영역은 다르다. 구분되어 있다. 우리가 노력을 해야 할 영역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다. 내게 주어진 가정, 내게 주어진 일, 내게 주어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 당장 내 손이 닿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것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믿고, 맡기며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기도해야 한다. 물론, 기도는 솔직해야 한다. 하나님 난 이걸 원합니다. 이런 저런걸 원합니다.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등등. 그런데 우리는 항상 마지막에 두 마디 정도를 붙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길 바랍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두 마디를 붙이지 못하고 그냥 요구하는데서 모든 것을 끝낸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미래의 목표]를 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목표에 매몰되고 사로잡히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그 목표를 우상으로 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이 그렇다. 우리의 목표,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을 갖는데 초점을 맞추고 그에 맞춘 노력을 하는 것은 그걸 하나님보다 높이 두게 만든단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러면 미래 생각은 안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다. 미래 생각, 해야지.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고,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 같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미래에 대한 목표는 우리의 욕심과 욕망, 바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 뜻보다 우선순위에서 위에 놓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따라 설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설정된 목표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현재 내 시점에서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할 일에 머리를 처박고 집중해야 한다.
즉,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아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의 마음보다 매일 만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 듯이,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기도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목표는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불안함과 초조함을 수반하지 않더라. 물론, 이는 [그리 아니해도 된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리 아니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게 그렇게 쉬운일인가? 그런 생각이 기꺼이 드는 것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닐까?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가보자. 배우자를 찾는 일도 그렇다. 사람들은 소개팅을 해라, 선을 봐라, 동아리활동을 해라, 교회를 옮겨라 등 여러 얘기를 하는데, 사실 하나님 관점에서는 내가 지금 누군가를 당장 만나기보다는 좋은 배우자로써 준비되는게 더 중요하고 먼저일 수 있다. 내게 그걸 더 바라시고 계실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하면 그건 하나님께서 이해는 하실지 몰라도 최소한 기뻐하시지는 않을 행위에 속할 것이다.
물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노력은 [사람을 찾는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되는데 집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건 노총각이 된 입장에서 분명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만나고 마음이 통하는 건, 그것도 단순히 서로의 욕망,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에 의지하고, 가치관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내 노력만으로는 절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맞아야 하는데, 이건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들을 하려 들지만 사실 그건 타이밍과 상대에 따라 다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좋은 타이밍]에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하나님께 여시고, 두 사람의 마음이 맞게 하실 것임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때로는 소개팅을 하고 열심히 찾아나서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럴 마음을 주시겠지. 때로는 기다리면서 내 자신을 다듬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실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기 전에, 움직이기 전에 하나님 앞에 먼저 나온다면.
직장이나 진로, 이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옮겨야 할 시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상황을 옮기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힘들다고 해서, 지금 당장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더 좋은 일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은 아닐 수 있다. 이는 세상적으로는 그 자리에 있는게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할 일, 우리 안에 하실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마음을 내놓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물으면서. 간절하게. 일단은 버텨야 한다. 현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미래의 선택은 잘못하면 우리의 욕망과 욕심으로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옮기셔야 할 때는 상황을 움직이시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더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는 건지 내가 가고 싶은건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매일, 매일 나가고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으면 구분할 수가 없다. 올해 들어 더 확실히 느끼는 것은 2-3일만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구분되지 않는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불편한 관계나 힘든 관계를 풀고 싶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두 사람 사이에 일하시도록, 마음을 움직이고 상황을 움직이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는 사람의 마음이야 말로 누군가의 노력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노력을 한답시고 하는 것이 오히려 관계를 망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사람들은 기도할게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산다면 기도할 것은 넘치고 넘치게 된다. 이는 우리가 평소에 하는 [고민]은 모두 일단 하나님 앞에 내놔야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들까지도. 그렇다면 기도할게 없다는 사람은 고민이 없단 것을 의미하는데, 그게 말이나 되나? 그리고 우린 하나님 앞에 서면 설수록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실 기도는 끊어질 수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힘과 노력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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