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프리랜서다 보니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료를 낸다. 솔직히 말해 아깝단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심지어 올해 11월에 갑자기 뛰어버린 보험료에 화가 나서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따지기도 했다. 그 시점에 프리랜서들의 건강보험료에 대한 문제가 쟁점화되어 법 정책적인 보완이 필요하단 기사까지 나왔었다. 어느 연세 있으신 작가님께서 따지시고, 국회의원을 만나 그에 대한 대화도 나누셔서.
프리랜서들의 건강보험료 산정방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프리랜서들의 경우 매달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매달 수입에 따라 보험료를 징수할 수가 없어서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수입 총액을 정하고 그 총액에 근거해서 그해 11월부터 다음 해 10월까지 (인지 12월에서 11월인지는 조금 헷갈린다)의 건강보험료 기준을 산정해서 부과한다. 즉, 프리랜서들은 자신이 올린 소득에 맞는 지역가입자로서의 건강보험료를 실질적으로 거의 2년 후에야 내는 것이다.
문제는 프리랜서들의 수입이 불규칙하다 보니 작년에는 꽤 많았다가도 올해는 확 줄어버릴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작년이 당장 그럴 것이다. 내가 아는 프리랜서들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전 수입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산정하면 그 비용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예를 들면 2019년에 프리랜서로 수입이 상당히 많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2020년에 수입이 확 줄어든 사람은 2020년 말부터 2021년에 2019년 수입을 기준으로 산정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게 되면 이는 개인에게 엄청난 부담일 수 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은 프리랜서들이 자신이 하던 일이 종결되었다는 증명을 내면 그만둔 시기와 총수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건강보험료 산정 기준을 조정하고, 더 많이 낸 부분에 대해서는 환급을 해준다. 작년 연말에 문제가 된 것은 이 증명서를 프리랜서들이 다 발급받아서 내야 하는데 문제는 작은 회사들은 그런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법도 모르고, 혹여나 프리랜서들이 계약되었던 일을 한 회사와 나쁘게 일이 마무리되었으면 다시 연락해서 증명서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프리랜서들이 증명서를 다 받아서 내라는 건 너무하단 것이 쟁점의 요지였다.
사실 내부 시스템을 조금 손보면 이 정도는 건강보험공단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긴 하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계약되어서 일했다는 게 다 등록이 되니, 그걸 반영해서 산정을 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고, 그럴 경우 프리랜서들 중에는 지역가입자라 하더라도 사실 소득이 실시간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덜 내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내 계약들 중 상당수는 작년 상반기에 끝났고,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수입이 월 100만 원도 되지 않아서 통장 잔고를 까먹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가 일했던 곳들과 나쁘게 끝난 것도 아니고, 지인을 통해 들어왔던 일들이 절반을 조금 넘기 때문에 부탁만 하면 서류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그냥 감면받지 않기로 했다. 내가 더 힘들어지면, 새로 세워진 기준에 맞춰서 보험료를 내기가 힘들 정도가 되면 그때는 신청을 해서 감면을 받겠지만 (감면은 신청하는 시점 기준으로 5년 전 보험료까지 환급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프리랜서들의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것은 일종의 특혜지 당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수입이 더 많았던 시기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내는 것은 억울하고, 조금은 버겁기도 했지만 그건 사실 내가 냈어야 하는 보험료를 나중에 내게 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다하자고 생각하고 감면을 받지 않았다.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인 친구는 공공의료기관이 돈을 얼마나 막 쓰는지를 설명해주며 '니 돈이 그렇게 쓰이는 거야. 아깝지도 않냐?'라고 했지만, 그건 그거고, 내가 책임을 다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낼 건 다 내야 더 당당하게 그런 것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지 않겠나? 또 그 친구는 분노하면서 얘기했지만 그런 문제가 아무리 커도 여의도에서 일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받는 세비만큼 아까울까? 그런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 아깝지 않은 게 거의 없다. 우리 세대는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조차도 모르는데 국민연금을 내야 하는 것도 억울하지 않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 바보 같을 정도로 정석으로 그렇게 하고 사는 것. 그게 좋은 사회 구성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그래도 법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인데 그 정도 윤리의식과 책임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내기로 했다. 내가 당장 그걸 내기 힘든 정도라면 또 몰라도 그 정도 금액은 아니기에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내가 되게 멋있는 사람 같지만 사실 내가 보험료를 그대로 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이 물질적인 것에 구속되어 살아가지 않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내가 계약이 끝났다는 증명서를 내고 볼 수 있는 이익이 정확히 얼마인진 모르지만 적어도 수십 만원 이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거 12개월로 나누면 또 그렇게 엄청난 금액은 아니다. 그 정도의 물질적 이익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다면, 혹여나 내가 더 큰돈을 벌었을 때 더 큰돈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봤다. 어떻게든 내 손에 한 푼이라도 더 쥐기 위해 아등바등 살겠지.
(사실 내야 하는 걸 내는 것이니 손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 손해를 감당하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손에 쥐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정도의 결정은 돈을 좇음으로 인해 사람은 보지 않고 짓밟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를 위해서,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내가 돈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한 결정이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쿨하고 아무렇지도 않단 것은 아니다. 난 지금도 건강보험료 통지서와 영수증이 오면 금액을 보고 짜증이 나기 때문에 봉투를 열어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면서 그 정도 금액을 감당하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야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벌어도 내가 한 푼이라도 더 쥐기 위해 추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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