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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단편적인 생각들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한단 생각을 몇 달째 강박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손은 책으로 향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향하지 못한다. '내가 책을 읽는 사치를 누릴 때인가'란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지금 내 상황에 책을 읽는 것은 왠지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책을 정말 미친 듯이 읽고 싶은데' 또 읽으면 안 될 듯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안락한 삶을 살 때인가 싶어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 행복을 누려도 되는 상황인가 싶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 시간에 일해야 하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벌려놓은 어떤 일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란 점을 감안하면 지금 나는 책을 읽는 사치를 누려선 안된단 압박감에 시달린단 것이다. 그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 사실 다 거짓말이고 변명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자 변명. 그걸 어떻게 아냐고? 책은 읽지 못하면서 그 시간에 짧은 영상들은,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를 할 때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을 보고 있었으니까. 책은 읽지 못하겠으면서 영상은 보고, 걱정은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또 다른 측면에선 거짓말이 아니다. 이는 휘발성이 강한 영상과 달리 책은 읽으면 그쪽으로 생각이 계속 끌려가기 때문에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과 직결되지 않은 책들을 읽을 경우 책에 담겨 있는 생각들에 빠져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랬다간 내가 해야만 하는 일, 해야만 하는 글쓰기를 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의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100%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상황의 또 다른 아이러니는 이러면서 정작 내가 읽어야 할 책, 논문, 글은 읽지 않고 이러고 있단 것이다. 그렇다. 사실 나는 책을, 논문을,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일인, 아니 조금 더 당위적으로 일이어야 하는데 그걸 충분히 열심히 하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는 상태로 지내고 있는 프리랜서일수도 있고 백수일 수도 있는 (매달 입금되는 건이 있으니 백수는 아니겠구나)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 난 책을, 글을 읽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일이 되어버리니 내가 읽어야 할 책과 글은 읽기 싫고 다른 책만 읽고 싶어 지는 것이다. 시험 전에는 다른 어떤 것도 재미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일로 책과 글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에겐 그게 일이 아니니 스스로를 일과 단절시키기 위해서라도 읽고 쓸 수 있을 것 아닌가. 확실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하기 싫어진단 것이다. 

일단 무슨 책이라도 읽고 봐야겠다. 그러다 보면 일로 읽어야 할 글이 읽히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