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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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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장-10장 묵상 이런 부분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은 벌을 주시는 분'이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그 부분에 대한 오해가 해결된 상태에서도 개인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이다. 만약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가 그런 인간인 것이라면 여기에 나오는 재앙들의 잔혹함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잔혹하게 하셨다함은 그 모든 재앙을 하나님께서 주기로 마음 먹으신 것이 아닌가? 물론 여기에서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7장에서 10장 사이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졌단 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것은 아니다. 그냥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졌을 때도 있고 9번의 재앙 중에 완악해진 마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도 ..
출애굽기 4-6장 묵상 자료를 좀 찾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4장 24-26절에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부분은. 어떤 이들은 '할례' 때문에 그렇다고 하고, 성경배경주석에서는 모세의 손에 여전히 피가 묻어있는 부분에 대한 내용이라고 나온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공부하고 알아봐야 할 듯. 이번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모세의 자신 없음이다. 하나님이 약속하고 명령하시기를 수차례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자신 없어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한다. 하나님께서 계속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미디안인 아내를 맞이해서 사는 동안 훈련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설교도 많다. 하지만 모세의 모습을 보면 그는 준비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그가 애굽에 있을 ..
출애굽기 1-3장 묵상 야곱과 요셉, 그 형제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모태신앙'이라는 표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지만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게 어머니 배에 있을 때부터 신앙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이 표현이 알게 모르게 자신의 신앙이 괜찮음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면도 있는게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즘 표현으로 하면 모두 모태신앙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자의 후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어떠했나?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나? 그들은 자신들끼리 싸웠다. 그리고 여기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으로 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 애굽 땅에 있는 이방인들과도 결혼을 하며 문화도 뒤섞였을..
창세기 48-50장 묵상 야곱이 세상을 떠나면서 요셉의 아이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유다에게 축복을 해준다. 여기에서 나오는 공통점은 '장자'에게 축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셉의 반응에서, 그리고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챌 때도 당시에는 장자에게 축복을 주고 물려주는 것이 우선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문화 또는 관습과는 무관하게 야곱은 장자가 아닌 자들에게 축복을 준다. 본인은 그것을 가로챘지만, 본인은 그렇게 축복한다. 이는 인간의 관습, 문화, 전통보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우선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사회적인 관습, 문화 등에서 자유로워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때때로 세상이 이렇고, 사회적으로 이렇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계획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창세기 45-47장 묵상 예전에는 창세기에서 야곱이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온 후에 애굽과 가나안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요셉이 나오는 부분을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유다에게 장자권이 부여되는 과정으로 읽으니 그 부분이 해결된다. 그 부분은 야곱이, 이스라엘이 애굽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겪었을 것들을 보여준다. 생각해보자. 야곱의 아들들은 7년 중 1-2년 정도의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두 번째 방문에서는 자신들을 애굽의 총리가 해할까 봐 그것이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애굽을 방문했다. 자신들의 가방 안에 있던 돈을 다 가지고.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애굽까지 가야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돈으로 살 수 있는게 없을 정도로 가뭄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
창세기 42-44장 묵상 신기하게도 창세기를, 일반적으로 '요셉 이야기'라고 인식하던 것에 대한 관점이 '유다 이야기'로 바뀌니 유다가 계속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유다를 간과하고 살았나 싶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요셉인지 모르고 왔다 돌아갔다가 다시 요셉에게 오는 과정에서 유다는 많은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다시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가고, 요셉에게는 자신의 동생 대신 자신이 남겠다고 설명한다. 44장은 거의 유다가 혼자 말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다의 모습에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하는 리더십이 보인다. 자신의 동생 짐 안에서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다면, 그대신 남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아버지를 위..
창세기 39-41장 묵상 요셉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이렇게 억울해도 참고 견디며 하나님 안에 있으니 하나님이 결국 일하시더라'라고 많이들 이해하는 부분.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조금 미묘하게 다르게 와 닿는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우리가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일어나더라'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두 시선은 현실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전자의 경우 '그래 내가 이렇게 고난을 참고 견디다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를 주실거야'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되고 기다림은 그것을 온전히 신뢰함으로만 이뤄진다. 즉, 전자는 나의 노력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과관계에 있음을 수 있음..
창세기 37-39장 묵상 이 부분에 대한 설교는 대부분 그 뒤에 요셉의 삶과 결부하여 '결국 힘든 일도 쓰시는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억울함을 당해도 참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에는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37장에서 요셉이 자신의 꿈을 얘기했을 때 형제들은 분노했지만 야곱은 그것을 귀 기울여 들었다는 37장 11절과 요셉의 이야기 사이에 갑자기 들어온 유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요셉이 자신의 꿈을 얘기했을때, 그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이때 철이 없을 나이였다. 그가 17살에 팔려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다. 그 나이 때는 누구든 본인이 조금은 과시하고 싶어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