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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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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2-44장 묵상 신기하게도 창세기를, 일반적으로 '요셉 이야기'라고 인식하던 것에 대한 관점이 '유다 이야기'로 바뀌니 유다가 계속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이토록 유다를 간과하고 살았나 싶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요셉인지 모르고 왔다 돌아갔다가 다시 요셉에게 오는 과정에서 유다는 많은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다시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가고, 요셉에게는 자신의 동생 대신 자신이 남겠다고 설명한다. 44장은 거의 유다가 혼자 말을 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다의 모습에서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하는 리더십이 보인다. 자신의 동생 짐 안에서 총리의 은잔이 발견되었다면, 그대신 남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일일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아버지를 위..
창세기 39-41장 묵상 요셉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이렇게 억울해도 참고 견디며 하나님 안에 있으니 하나님이 결국 일하시더라'라고 많이들 이해하는 부분. 나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조금 미묘하게 다르게 와 닿는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우리가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일어나더라'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두 시선은 현실에서 큰 차이를 가져온다. 전자의 경우 '그래 내가 이렇게 고난을 참고 견디다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를 주실거야'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되고 기다림은 그것을 온전히 신뢰함으로만 이뤄진다. 즉, 전자는 나의 노력과 하나님의 일하심이 인과관계에 있음을 수 있음..
창세기 37-39장 묵상 이 부분에 대한 설교는 대부분 그 뒤에 요셉의 삶과 결부하여 '결국 힘든 일도 쓰시는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억울함을 당해도 참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에는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것으로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부분을 읽으면서 두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37장에서 요셉이 자신의 꿈을 얘기했을 때 형제들은 분노했지만 야곱은 그것을 귀 기울여 들었다는 37장 11절과 요셉의 이야기 사이에 갑자기 들어온 유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요셉이 자신의 꿈을 얘기했을때, 그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이때 철이 없을 나이였다. 그가 17살에 팔려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지금으로 따지면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다. 그 나이 때는 누구든 본인이 조금은 과시하고 싶어할 수 있..
창세기 34-36장 묵상 이전 말씀에서 유추 가능했던 것처럼 역시나 야곱의 집안에는 우상이 가득했고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지는 않았던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이는 야곱이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후에도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구속된 삶을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디 야곱뿐이겠나?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수많은 우상들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팔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벌하시거나 책망하시지 않는다. 심지어 그 아들들이 사람을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를 용서하시고 그들..
창세기 31-33장 묵상 우리는 야곱이 천사와 싸워서 환도뼈를 다치는 장면을 '역시 야곱은 대단해'라고 해석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야곱이 대단한게 아니라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내용이 과연 그가 그저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사와 씨름을 하기 전의 야곱은 사실 유일신인 하나님을 벧엘에서 만나긴 했지만 그에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우상도 섬겼을지 모른다. 14년을 삼촌 밑에서 일하면서 말이다. 그에겐 여전히 세상적인 것이 중요했고, 그는 자신의 것을 챙길 줄 아는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천사와 씨름을 야곱은 사실 야곱이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보는 삶을 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야곱'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그가 그 전에 하나님의 뜻에..
창세기 28-30장 묵상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이나 설교는 대부분 야곱이 총 14년을 참고 지냈다거나 야곱이 본인의 삼촌에게서 어떻게 재산을 가져왔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야곱이 보인 모습들은 좋게 말하면 굉장히 인간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얍삽하다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들이다. 자신이 갖고 싶은 여자를 위해서 7년을 더 섬기고, 둘 중에 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은 재산을 갖기 위해서 술수를 쓰는 사람이 야곱이었다. 성경에서 이 부분은 어쩌면 야곱이 얼마나 부족하고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뒤에 그가 변하는 모습과 연계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벧엘에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중심으로 사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너희도 지금 나를..
창세기 24-25장 묵상 창세기에서 이 부분을 묵상하면 대부분은 팥죽로 장자권을 사고 판 얘기를 보게 된다. 그런데 나이 때문인지 아무래도 오늘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배우자를 골라주신 부분과, 이삭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얼마나 적은 지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삭의 배우자를 선택해주시는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데 사실 성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기 때문에 기록까지 남은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해주실 능력은 있으시지만 항상 그러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사는 땅에서 하나님의 유산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외적으로 이렇게까지 개입하셨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창세기 18장-23장 묵상 창세기에서 이 부분은 창세기가 단순히 개신교의 영역을 넘어서 왜 천주교는 물론이고 유대교의 basis가 되는 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역사는 중동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시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역사 그 자체다. 창세기의 이 부분에서 하나님은 하갈의 아들인 이스라엘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사실, 롯의 두 딸이 낳은 아들이 모압의 조상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오늘날 '중동'으로 구분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자들의 사조가 되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유대교에서 기초를 두고 예수님을 기점으로 해서 갈라져 나왔다. 그렇다 보니 유대교와 기독교는 구약에서의 역사를 공유할 수밖에 없고, 이는 중동지역에서 형서된 종교들의 경우가 모두 그렇다. 따라서 이를 부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