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2020년 봄, 제주

(15)
제주의 변화들 돌집을 살려서 만든 게하, '늘작' 몇 년 전에 묵었던 '함피디네 돌집'. 아니, 이름이 바뀌었으니 '늘작'. 이름이 바뀌어서 조금은 걱정을 했었다.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닐지,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그 공간 자체가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지. 사실 제주에 올 때마다 드는 걱정이긴 하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변했을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공간은 그대로일까? 그 풍경은? 그 음식은? 다행히도 '늘작'은 내가 방문했을 당시 사장님께서 그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방문했을 때도 게하의 주인이었던 '함 피디'는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 몇 년간 수백, 수천 명의 손님들이 오갔을 것이고 그저 도미토리 숙객 중 한 명이었던 나를 사장님이 기억할 리가 없지만, 난 사장님을 보는 순간 기..
제주의 심야식당 제주는 시내가 아니면 늦게 뭔가를 할 수가 없다. 예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오던 곳들은 조금 덜 하지만, 그런 곳들도 11시 이후에는 문을 연 곳이 거의 없다. 최근 10년 동안 외지인들이 들어가 숙소를 연 작은 마을들은 해만 지면 칠흑 같이 어두워진다. 그럴 때면 책을 읽거나 같이 온 여행객들과 숙소에서 놀아야 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런 작은 마을에 쉬러 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노는 곳을 좋아할 리도 없다. 그런 사람들 위해서 아주 조금씩 소소하고 혼술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생기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마을 몇 군데 중 하나인 종달리에 있는 '종달리엔'은 3년 전부터 가려고 할 때마다 실패했던 곳이다. 알고 보니 주인장이 일 년에 절반만 문을 연다는 데, 그나마 문을 열 때는..
내게 제주는 느림이다 제주가 다 느린 것은 아니다.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제주에서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서울보다 더 빠르고 치열하면 했지 덜하지 않다고 한다. 과외도,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경쟁도. 제주를 여행으로 오는 사람들은 '이 좋은 곳에서 왜 그럴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제주도의 땅값이 엄청나게 오른 것은 불과 지난 10년 간의 일이다. 어느 바닷가 동네는 모래가 너무 몰려와서 살 곳이 못된다는 이유로 집 10채가 다 합해서 5천만 원이었다고도 한다 (나도 들은 얘기라 그게 팩트라고 보장은 못하겠다. 지금의 제주를 생각하면 상상이 안되어서...). 밤바다를 밝히는 제주의 불빛은 제주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
제주는 밤이 좋다. 서울의 밤은 너무 밝다. 최소한 내겐 그렇다. 어느 순간부턴가 본래 그러한 것은 그러하게 두는 것, 즉 가장 본질적인 것을 좋아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며 살고 있는데, 밤의 본질은 어두움이기 때문에, 서울의 밤은 내게 너무 밝다. 글이 주로 어둠이 내리고, 서울의 밤이 고요해졌을 때 쓰여지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주는 밤이 좋다. 제주시와 서귀포 시내에 있지 않은 이상, 아니 그 안에 있어도 서울은 대낮 같이 밝은 11시에는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시내에 있지 않으면 제주도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서 밝아지고 어두워진다. 그 어두움이 저녁에는 길이 아닌 네비를 보면서 운전해야 할 정도로 칠흑 같이 어둡지만, 난 그 어두움을 불편해한 적은 있어도 그에 대해 불평한..
동쪽이 좋아요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유명한 곳들을 찍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액티비티 하는 것을, 또 어떤 사람들은 한 곳에서 길게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 경우를 보면 심지어 우리 부모님과 내 여행 방식도 다른데, 그런 다름을 예전에는 틀림 또는 '여행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방법이 '다르다'라고 해서 그게 '틀린 것'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애초에 제주의 북쪽과 남쪽, 즉 제주시 시내와 서귀포시 시내는 잘 가지 않았다. 천지연 폭포 등 전통적인 관광명소는 부모님과 왔을 때의 기억이 있어서 잘 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고, 언젠가는 한번 다시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지만 뭐 여하튼 지금까지 난 그렇게 제주..
핫플과 맛집은 몰라요. 가족 여행이 아닌 나의 첫 제주 여행은 2011년이었다. 숙소는 산방산 아래에 있는 '더게스트하우스.' 아직까지 동생과 단 둘이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다. 그 1-2년 전에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폐허처럼 문을 닫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얼마 전에 다시 찾아보니 다른 분이 인수해서 운영하시는 듯하다. 공용공간이던 큼지막한 서재는 4인이 묵을 수 있는 방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 주인이 직접 지으면서 건물 안에 침대를 아예 빌트인으로 지었던 모습은 그대로인 듯하다. 사진을 보니. 더게스트하우스에 다시 묵은 적은 없지만, 나의 제주여행은 그 이후로 2-3년 안에서 맴돌고 있다. 숙소도, 경로도, 식당도. 더게스트하우스 이후에 묵었던 쫄깃 센터에는 몇 번을 더 묵었고 협재는 나의 서쪽 제주 여행의 기점 역할..
제주에 살고 싶진 않아요. 제주에 살고 싶진 않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제주에 처음 몇 번 내려올 때는 제주에 살고 싶었다.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2011년에 내려와서 게스트하우스(이하 '게하')에 묵었을 때는 서울에서 내려온 게하 주인의 삶이 부러웠고 서울로 돌아가서 몇 주 동안은 제주 부동산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간 제주 앓이를 했다. 내가 제주에 자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내려오게 된 데는 사실 지인들의 영향이 컸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제주에 내려가는 지인들의 페북 포스팅을 보면서 '왜 이렇게 자주 가지?'라던 생각이 나도 거의 정기적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자주 갈 수 있으면 좋겠다'로 변했다. 그중에는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몇 년이 그렇게 지나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