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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사랑

'평생 싱글로 살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오랜만에 첫 직장의 회사 동기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대학 때부터 만나던 남자 친구와 일찍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11살이라는 데 깜짝 놀랐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만나서 곧바로 아이가 생겨도,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해도 그 아이가 11살일 때 내 동기의 아이는 성인이 되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 겪은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우울하거나 비참하단 느낌 없이 담담하게 '이젠 현실적으로 싱글로 죽을 수도 있단 생각도 하면서 살아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 통화를 마치고 편하게 별의별 얘기를 다했던 동생과 나눈 카톡 대화.

나: 이젠 진짜 싱글로 살다 죽게 될지도...
B: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비혼인 사람들도 요즘 많잖아!
나: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다고... 비혼, 혼자 사는 삶이 나을 수도 있다고 하는 건 그렇게 되어보지 않아서 하는 얘기야... 결혼 생각 없던 사람들도 40 전후되면 가정을 꾸리고 싶단 마음 거의 갖게 되더라. 일찍 결혼한 거 너무 잘한 결정이고, 그러니까 서로한테 고마워하며 잘 살아
B: 어 그래, 그런데 그것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할 수 있는 말이야. 

 

안다. 워낙 많이 들은 얘기이고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어떤 맥락의 이야기들인지 너무 잘 안다. 사실 기혼자들이 싱글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 중에 하나는 싱글들이 기혼자들의 힘듬을 생각보다 지식적으로는 꽤나 많이, 잘 안단 것이다. 그들은 '싱글들은 모를 거야'라고 생각하며 '너희가 뭘 알아'를 전제하고 말을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가고 결혼한 지인들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결혼을 하고 나서 무엇이 힘든 지를 꽤나 잘 안다. 

왜냐고? 기혼자들은 싱글을 만나면 그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많은 싱글이라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정도로 기혼자들의 어려움과 그 이유들에 대해서 기혼자 개인보다 훨씬 더 많이, 잘 안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본인 결혼생활에서 힘든 것만 얘기하지만 싱글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결혼생활의 다양한 힘든 점들을 듣게 되기 때문에. 그것도 반복적으로. 그렇다 보니 40 전후가 된 싱글들은 친구들이 어느 정도만 있고, 그들과 한 번씩만 만나도 머리로는 결혼생활이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왜 힘든 지를 꽤나 잘 안다. 

반면에 기혼자들은 싱글들의 삶을 잘 모른다. 아니, 30대 중반 정도까지의 삶은 아는 경우가 많지만 친구들이 결혼하고, 부모님은 연세가 드시고, 일 자체가 줄 수 있는 흥미, 가치와 재미의 한계가 느껴지면서 몸으로 노화되는 걸 느끼는 사람들의 삶을 모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나이 있는 싱글'인 사람들이 힘들거나 외롭다고 하면 돌아오는 피드백이 긍정적일 때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없어 보이기 때문에' 싱글들이 자신의 얘기를 잘 안 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기혼자들은 '너희는 자유롭게 아무거나 할 수 있잖아'라면서 싱글들의 삶을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싱글들은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반면 기혼자들은 싱글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그건 싱글들의 경우 그렇게 기혼자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야 만날 사람이 있는 반면 기혼자들은 항상 어떤 형태로든 사적인 대화를 할 사람이 있다 보니 상대가 갖는 '희소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은 배우자, 본인과 배우자의 부모님과 가족, 아이가 있으면 아이까지... 대화 자체가 필요한 사람은 이미 있다. 다만, 그들은 그 영역에서 힘든 것을 토로할 사람은 없다 보니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그 관계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그렇다 보니 싱글들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싱글들은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들면 친구들 중 상당수가 결혼을 해서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싱글들인 친구들도 만날 수 있지만 사실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서로 만나도 특별히 할 얘기가 없기 때문에 자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드물다. 이는 친구들이 같은 분야에서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니 만나도 대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만나서 하는 얘기들은 보통 10대에서 30대 초반 언젠가까지의 이야기들이고,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면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대화는 길어야 2-3시간 정도 지속된다. 그렇다 보니 친구들도 자주 보기보다는 1년에 1-2번,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느낌의 만남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싱글들은 기혼자들과 만나도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어쨌든 듣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야, 싱글로 사는 게 네가 생각하는 거랑 다르다고!'라고 항변해 봤자 상대는 '네가 결혼을 안 해 봐서 그래. 나는 싱글 해봤잖아'라는 식으로 싱글들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누가 옳을까? 나이 든 싱글로 더 힘들까? 아니면 결혼해서 사는 게 더 힘들까? 사실 이에 대해서 명확한 답은 없다. 본인이 상대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이거나 상대도 그렇다면 결혼생활은 싱글로 사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서로의 옆에 있어주지 못하고, 서로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부부로 사는 건 지옥에 사는 것과 같을 테니까. 반면에 서로의 옆을 지켜주고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결혼한 것이 싱글보다 당연히 훨씬 행복한 삶을 산다. 싱글로 사는 건 그 중간 어딘가에 있고, 그마저도 사실 개인에 따라 다르게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힘들지 않은 인생은 없단 것이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니 돈이 많아지면 또 그 돈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삶에 어떤 형태로든 힘듬이 있다고 해서 '나 같지 않은 삶은 덜 힘들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걸 전제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듣기 시작할 것이다. 어떤 위치에서든 우리는 다양하게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 힘듬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그 힘듬에 대한 대가로 인해 돌아오는 게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대가가 크다면 그 힘듬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맞다. 

이 틀을 기혼자와 싱글에게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기혼자의 힘듬은 배우자와의 다름, 아이가 생기면 거기에 쏟게 되는 에너지와 노력, 챙겨야 하는 가족이 늘어나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내가 마음껏,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까지. 그러한 '부담'에 대한 대가로 기혼자들은 '내 옆에 있고, 편이 되어주는(또는 그래야 하는)' 배우자, (어느 정도 나이까지는) 존재 자체로 귀엽고 기쁨을 주는 아이를 받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커감에 따라 힘듬과 기쁨을 번갈아 가면서 주게 된다. 

싱글들은 어떨까? 싱글은 혼자 있는 덕분에 자유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맞다. 그리고 그 자유는 다양한 취미는 물론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고, 휴가를 갈 수 있... 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다른 글에서 설명했듯이 그런 자유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은 길어도 5-10년 이상 가지 못하고, 언젠가부터는 그 자유도 지겹게 느껴지는 순간이 오지만 그런 면이 있는 것도 분명 사실이다. 

자유로운 연애? 남녀를 불문하고 그건 나이가 들수록 하기가 힘들다. 가볍게,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는 젊었을 때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정말 의지할 수 있고, 옆에 있어주는 사람을 찾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그건 그럴만한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를 신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싱글들의 자유는 생각보다는 자유롭지 않다. 사실 인간은 대부분 적절한 수준의 자유와 적절한 수준의 구속을 통해서 안정감과 자유로움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는데 싱글들의 자유는 구속된 지점이 없음으로 인해 안정감이 없다 보니 그로 인해 느끼는 행복은 시간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싱글들이 대부분 인정하지 않지만 싱글들이 일에 이상할 정도로 몰입하는 것도, 남들이 보면 SNS나 관계에 집착하듯이 열심히 하게 되고 맛집, 여행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그 많은 자유 안에서 외롭고 고독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계실 수는 있지만 사실 싱글들이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들면 많은 경우 그들에게 부모님은 내 옆에, 내 편보다는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굳이 싱글과 기혼을 나누지 말고 뿌리로, 근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사랑이 필요한 존재다. 아무리 내향적이고 사람을 만나는 걸 크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1년 내내 집에만 있고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살면 정신질환에 걸릴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은 꼭 남녀 간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공감하고, 삶을 나누는 게 필요하단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기혼자들은 그러하기로 자신이 '약속'한, 자신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한 상대가 있다. 반면에 싱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줄어갈 수밖에 없다. 사회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공감하고, 대화가 통하려면 공유할 수 있는 게 있거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반면에 기혼자들은 '가정'이라는 공동체,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의 양육의 영역에서 그럴 수 있는 매개체를 갖고 있다. 그걸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잘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을 선택한 것도 결국은 본인 탓이지만 어쨌든 기혼자들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에서 싱글과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그렇다면 싱글들도 만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일단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신뢰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이상까지 싱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매우, 극히 드물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찾는 것도 힘들어진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기회는 확연하게 줄어든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나이가 들수록 관계들은 많은 경우 피상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에 더해서 신체적으로는 노화가 진행되어 더 쉽게 피곤해 지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 '눈을 조금 낮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혼자들은 본인들은 눈을 낮춰서 결혼했다고 하는데 이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결혼한 사람들일수록 대부분이 연애를 시작할 때 '호르몬 작용'에 눈이 멀고, 그 덕분에(?) 상대의 여러 가지를 '괜찮을 거야'라며 넘어가 준다. 최소한 결혼을 앞두고는 브레이크를 잡고 이성으로 생각해 봐야 할 정도로. 기혼자들은 그래서는 안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사실은 그 덕분에 그나마 상대도 자신을 만나준 것임을 모를까? 그것만 알아도 결혼생활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싱글들은 나이가 들수록 일단 그 '호르몬 작용'이 예전만큼 빠르게 일어나지를 않는다. 이는 신체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에너지가 줄어들어 호르몬 작용에 투입될 수 있는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싱글들은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이성적 매력'을 어렸을 때만큼 빨리, 많이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싱글들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감정이 이 수준인 건 상대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야...'라며 사람들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호르몬 작용이 어렸을 때만큼 빠르지 않다 보니 상대의 여러 '객관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데 사실 그런 시선으로 누군가를 보기 시작하면... 사실 연인으로 발전할 수준의 신뢰를 형성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까다로워지는 것처럼 보이고, 연애가 어려워지는 건 이 때문이다. 

이 글은 사실 '아 기혼자 또 어지간히 본인이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네'라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 쓴 글이다. 기혼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본인은 싱글들의 삶을 알고 싱글들은 기혼자의 삶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 들을 만큼 들어서 지쳤고...

그런데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이는 20대의 싱글과 30대 초중반의 싱글과 그 이후의 싱글의 삶과 환경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혼자들은 이혼을 할지 여부에 대한 생각은 할지 몰라도 결혼을 하는 순간 결혼과 가정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반면 싱글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결혼은 해야 하는 건지, 결혼하면 어떨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그에 대해서는 기혼자들보다 싱글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그에 대한 생각과 고민의 총량이 기혼자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심지어 결혼에 대해서도 최소한 지식적으로는 그렇다. 그건 앞에서 설명했듯이 기혼자들은 본인의 결혼생활이 전부지만 싱글들은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케이스들을 듣게 되고, 그 간접경험들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