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자의 시각
하와이에 여행 온 여자들과 돌아가며 잠자리를 즐기던 남자가 잠자고 일어나면 어제 있었던 일을 반복적으로 잊어버리는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사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이러한 사랑을 바라보게 되면 말이 안 되어 보이는 것이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아무리 그다음 날 일어났을 때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일들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여준다고 한들, 두 사람 간의 추억이 축적되지 않는 관계가 평생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연애라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은 두 사람 간의 추억이 서로에게 쌓이는 것이며, 그렇게 서로 공유한 추억과 감정을 기반으로 단단한 신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영화에서 헨리와 루시의 사랑은 사실 매우 비현실적이다. 같이 대화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이,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연인관계가 오래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한국에서 올해 6월에 재개봉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꿈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에서 헨리가 루시가 갖고 있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아픔을 품어주는 과정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혹은 꿈꾸는 연애 또는 사랑과 닮아있지 않은가?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면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자아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까지 품어주는 사람을 우리는 모두 원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까지 품어주는 모습은 우리가 그 사람을 더 사랑하게 해주지 않던가?
상대의 단점을, 부족한 점을 알면서 품어주고 같이 가는 것.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의 감독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이 영화는 사랑은 사실 우리가 머리로, 의식의 세계에서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헨리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지만 무의식의 세계가 작동하는 무의식 세계에서 등장하는 그. 그렇다. 우리는 연애를 하거나 사랑을 시작할 때 때로는 머리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지만 사실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는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무의식의 흐름을 상대의 조건과 상황으로 판단하고 차단해 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우리가 아름다운 사랑을,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이 시대의 흐름에 빠져 사랑조차도 그렇게 접근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따지는 사람의 외모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변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능력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 곁에 있을 때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도록 옆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인지, 두 사람이 같이 있을 때 서로가 그런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인지가 아닐까?
머리보다는 마음, 의식보다는 무의식적인 사랑이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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