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
샤머니즘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초월적인 존재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신앙의 형태'라고 나는 정리한다. 샤머니즘의 역사, 샤머니즘이 갖는 지향성 등은 전 세계적으로 지역별, 민족별,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샤머니즘은 궁극적으로는 어쨌든 인간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믿거나 공덕을 쌓는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을 갖는 듯하다.
일부 한국교회와 샤머니즘
그런데 이러한 샤머니즘은 독립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샤머니즘은 다른 종교와 결합되어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일부(라고 나는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들은 기독교의 탈을 쓰고 성경과 샤머니즘을 결합하여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와 그 내용을 왜곡하고 있는 듯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것은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는다' '안수기도를 받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라는 식의 '믿음'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며 교인들을 설득하고 모으는 자칭 목회자들의 패턴을 보면 이는 기독교의 형식을 갖추고 있을 뿐 샤머니즘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국교회들이 이렇게 된 것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평양대부흥 집회 이후에 무당이던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 그러한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어디 무당이었던 사람이 목회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교회들에 완전히 다 물들었겠는가. 결국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가르치는데 소요되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쉽게, 쉽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들에 성경을 붙이다 보니 결국 이 사단이 나지 않았을까.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잘되고,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지 않는다.
앞으로 정리할 글들에서 더 구체적으로 풀어쓰겠지만 성경은, 그리고 '진짜' 기독교는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경적 가치'나 '기독교적 가치'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한 것들이 기독교적 가치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소명'이나 '비전'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가 물리적으로 '왕'이 될 것으로 믿었던 그의 제자들이나, 그의 출신으로 그를 판단하며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들이야말로 한국에서 기독교와 샤머니즘이 결합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며, 교계를 갈라놓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좋은 게 좋은 것이 맞는 것일까. 그런 기준을 들이대면 예수님은 그 시대에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는 '한국 기독교'에서 샤머니즘을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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