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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나는 왜 기독교인인가?

신에 대한 논쟁

신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시도들과 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그런 의도로 쓰인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 시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이 있다는 사실도, 없다는 사실도 결국은 [믿음]의 문제일 텐데 말이다. 신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낸 듯이 큰소리치는 이들도 사실 그 뿌리 끝까지 내려가면 그건 본인의 믿음이지 입증해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처럼 신은 입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이는 결국은 믿음의 문제다. 신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는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나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 수는 있으나 완벽하게 증명할 수 없는, 어느 쪽도 완벽하게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인 것이다. 신에 대한 논쟁은.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나의 [믿음]이다. 이에 따라 나는 자연스럽게 이 땅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이 세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도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일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신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것이겠지만, 어떤 것은 신이 그것이 일어나도록 방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함부로 신이 이런 일을 했다는 말을 입에 담지는 못 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모 대형교회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세월호를 침몰시키셨다]고 하신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난 하나님께서 그 옆에서, 우리보다도 더 가슴 아파하시며 울고 계셨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침몰하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 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심지어 부정하기도 하지만 말하는 것에 비춰봤을 때 '형식적인 무신론자'이지만 '실질적인 유신론자'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예를 들자면, [인연] [운명]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쉽게 사용하지만 사실 그러한 것은 뭔가 뒤에 결정되어 있는 게 전제되어야 성립하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인연과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는 아닐런지... 뭔가 보이지 않는 포스가 뒤에 있어서 그렇게 된다고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인연과 운명은 믿는 사람은 실질적인 유신론자 인지도 모른다.

진리는 단순하고, 이에 따라 나는 유일신의 존재를 믿는다.

지금 대한민국이 대통령을 둘러싼 사건들로 시끄럽다. 그런데 그 안에서만 봐도 우리는 진리는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그들의 태도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뭔가 복잡해 보인다. 진술도 어긋나고, 행동도 이상하다. 뭔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보인다. 이는 말과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 아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는 정말 단순한 표현으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설프게 알거나 잘 모르는 걸 아는척하려고 할 때 표현을 복잡하게 하게 된다.

이는 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고민들을 하면서 내가 유일신을 믿게 된, 혹은 믿기로 한 것은 그것이 가장 단순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여러 신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누가 우위에 있고 누가 열위에 있는가? 그리스 로마 신화만 보더라도 신이 여럿 존재한다면 많은 갈등과 문제, 부조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여러 종교 중에 다신교적인 사상을 가진 종교들을 내 종교 후보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뭔가 절대적인 통일된 존재가 있는 게 훨씬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종교 후보군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데 그중에서 대부분 종교들은 특정 인간들을 신성시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천주교만 하더라도 성인들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그 성인들도 내면에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을 것이란 사실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아버지 제가 왜 이러십니까?'라고 외치셨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할 수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치워달라고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을 누구는 성인이고 누구는 보통 사람으로 분류한단 말인가.

어느 노신부님께서 하신 인터뷰에서 기자가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성적인 욕구'라고 고백했듯이, 그리고 과거에 수도원에서 땅에 묻힌 아이들이 발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기독교, 혹은 개신교 외에 다른 종교는 모두 '누군가를' 신성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저렇게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어'라고 정당화하는 듯한 교리들이 있었다. 그러한 구조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개신교 외에 다른 종교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가 없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결국은 사랑이다.

위 내용들은 내가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믿지 않게 된, 즉 기독교인이 된 소극적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기독교인이 될 수는 없다. 기독교 혹은 개신교를 믿는 적극적인 이유가 있어야 그것을 누군가에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당장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고, 인간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지만, 왜 이것이 진리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종교들도 들여다봤지만 그러할수록 주관적인 입장에서는 그런 종교들의 이해되지 않는 측면들만이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사랑에 설득되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난, 기독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운명"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