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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사랑

누구를 위해 사랑하는가?

사랑에도 종류가 있다.

 최근에 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어느 수도원에 계셨던 신부님께서 아주 오래전에 쓰신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에로스, 필로스, 아가페와 같이 알아듣기 힘든 분류가 아닌, 사랑의 목적을 기준으로 해서 사랑의 종류를 분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4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방법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용을 시킨다면 그 내용이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람들 중에서는 말로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인은, 배우자는 본인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맞추지 않으면 불만을 토로하거나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여기고는 한다. 때로는 심지어 상대방이 본인에 맞출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연애를 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상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상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이 그런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인이나 배우자는 본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표현은 '사랑한다면서 그것도 못해주냐'라거나 '사랑하면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등의 표현이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 그렇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것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랑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로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기에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사랑'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 남을 사랑하는 사람

위의 예시처럼 연애 혹은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상대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런데 세부적인 디테일들에서 그렇게 상대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그 행동들이 모두 상대를 생각한 것은 아닌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줬으니 난 이만큼 괜찮은 사람이야'라던지, 아니면 '내가 이만큼 해주면 상대가 이만큼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대가 이런 마음을 갖고 무엇인가를 하는지 여부는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너한테 이런저런 걸 해줬는데 너도 이것저것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던지 '내가 이런저런 걸 해주고 있는데 넌 나한테 저러저러한 것도 못해주느냐'고 하는 경우는 많은 경우에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를 위한 것을 해줬지만 사실 그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아 물론,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경우, 진짜로 상대방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위와 같은 말이 오간다고 해서 상대가 무조건 '결국 나한테 해준 것도 다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남을 위해 남을 사랑하는 사람

연애나 결혼하는 데 있어서 의외로 '순수한 사랑'을 상대방을 위해서 모든 것을 맞추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실 비판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할 정도로 상대에게 잘하고, 본인이 항상 미안하며 본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조금만 더 했으면 안그랬얼꺼야'라던지 '내가 더 잘 했으면 상대가 떠나지 않았을꺼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 글들에서 설명했지만, 연애는 관계다. 어느 일방이 다른 사람을 섬기거나, 일방적인 희생을 하는 것은 연애도, 사랑도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전적으로 누군가의 탓일 수도 없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렇게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을 해주고 싶다. 만약 두 사람이 헤어졌다면 그건 가장 위의 경우와 같이 본인을 위해서 상대를 이용하는 경우는 전적으로 그렇게 이용한 사람의 탓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그저 두 사람이 맞지 않는 면이 있었던 경우가 가장 많다. 그렇게 순수하게, 혹은 순진하게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주면서 그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주기만 할 것이라면 굳이 연애를 할 필요가 있나? 그렇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자원봉사나 기부를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사실 봉사활동을 할 때도 상대가 고맙다고 표현을 하면,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눈빛과 행도을 통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그게 힘이 되지 않는가? 연인관계는, 부부관계는 한 사람의 희생 위에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것을 받는 사람은 최소한 상대가 그렇게 주는 것을 당연시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다 보면, 상대가 어느 순간 거기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남을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

사실 연애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를 사랑할 때 안에 있는 것, 없는 것을 끌어모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차고 넘치는 것을 상대에게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사실 자신이 상대를 사랑함으로써 하게 되는 행동들을 그렇게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그들이 '생각해서' 또는 '계산하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남을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상황, 감정 등에 기복에 있을 수밖에 없기에 남을 위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을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겠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 안이 채워져야 관계에도 충실할 수 있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채우는 방식이 때로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철저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이 어려운 이유

이렇듯 사람들이 똑같이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에도 그것을 사용하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의도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어떤 현상 한 가지를 놓고 '이 사람은 이래서 저러는 거야'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같은 패턴이 반복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경우에도 사실 상대가 본인과의 관계가 아닌 다른 상황에서 어떠한 위치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내가 마치 어떠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무슨 행동을 했는지가 분명하게 구분되고, 특정한 사람은 특정한 방식으로만 사랑을 하는 것처럼 단순화시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때로는 본인 생각만 하면서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부탁 및 요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해준 것에 대해서 피드백이나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상대가 하지 않을 경우 섭섭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런 반응들은 그것을 의식하고 한다기보다는 무의식 중에 그렇게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시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사실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마다 위에서 설명한 패턴의 '비율'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나 전반적인 '경향성'은 어느 정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성은 그 사람의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말은 누구나 번드러지게 할 수 있지 않겠나?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큼이나 본인이 상대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상대를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게 불편할 수 있다고 했지만, 사실 본인이 상대를 위해서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상대의 그러한 시간을 존중해 줄 수 있지 않겠나? 

이처럼 사랑은 어렵다. 사랑은 감정에 충실해야 하지만 감정에 휩쓸렸을 때는 잘못된 상대를 만나게 되고, 그건 본인에게 이성에 대한 트라우마나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마음으로, 감정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결국 핵심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이 모든 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경험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연애는 이전보다 쉬워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래도 연애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사람 관계가 가장 어렵지 않나. 사랑도, 연애도, 부부도 결국 사람 관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