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과 사랑
TV에서 심리학자, 사회학자와 과학자가 사랑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학자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것이며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얘기를 했고,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는 다른 맥락에서 논의를 풀어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심리학자, 사회학자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고 과학자의 얘기를 기억하는 것은 그 말이 엄청나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호르몬 작용이 여러 가지 신체적인 변화를 야기하긴 하겠지만 그 호르몬 작용을 시작하게 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그 과학자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그런데 실제로 연애와 관련해서, 특히 결혼한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고 그 이후로는 정으로 사는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연애를 하고 나서 일반적으로 도파민이 나오는 시기는 1-2년이고 그 이후에는 분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유효기간이 1-2년이라는주장이 제시된다. 도파민은 재미와 흥미를 느낄 때 생산이 되는데 결국 연애를 시작한 지 1-2년이 지나고 나면 그런 흥미와 호기심 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과거에 공유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그리고 현실 안에서 버틴다는 것이 그런 주장의 맥락인 듯하다.
누구나 익숙해진다.
물론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할 때는 긴장을 하고, 꼼꼼하게 따지지만 익숙해진 것에 대해서는 별 설레임 없이 기계적으로 처리하지 않나? 학교에서 첫 중간고사를 볼 때,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직장에서 첫 회의, 첫 업무보고, 상무님께 처음으로 보고를 드릴 때, 직장으로의 첫 출근.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할 때 긴장도 하지만 많이 설레이기도 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지고, 설레임을 느끼기보다는 때때로 지겨움을 넘어서 굳이 이걸 해야 하는지,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를 갖기도 하지 않나? 한 때는 그렇게 설레이고 즐거워하며 했던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듯 연애 외의 영역에서도 사실 사람은 지속적인 변화가 없으면 지루해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익숙해지면 그것을 하는데 큰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고 내가 할 수 있기에 별 것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된단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실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영화 보고, 밥 먹고, 같이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고, 여행 가고,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같이 하는 게 새로운 목록은 필연적으로 줄어들게 되어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연애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누구나 연인과 해보지 않은 경험이 줄어들게 되어있기에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연애에 더 시큰둥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워지기 위한 노력
그런데 사실 도파민이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이는 새로운 것을 할 때 만들어진다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시도한다면 도파민은 계속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부부도 서로에 대해서 온전히 모른다는 속설을 받아들인다면 사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상대에 대해서 항상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렇다면 결국 연애에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로 인해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상대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하는 것을 멈췄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사실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뭔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대를 보기에는 우리 인생도 버거운 면이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래서 그런 노력을 하지 못하는 게 잘못되었거나 고쳐야만 할 점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사람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런 노력을 자연스럽게 계속하게 될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 그런 노력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것까지 억지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래도 우리가 연애를 할 때만큼은 상대방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연인 간에 새로운 것이 엄청난 것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옷 색을 바꾸고, 예전에 내가 고집하던 것을 조금 양보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한 번씩 들어주는 것 자체가 사실 관계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변화들 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두 사람 간의 연애가, 아니 도파민이 계속 생성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것들은 찾으려면 계속 찾을 수 있지 않나? 하다 못해 '당신 이마에 주름이 생겼는데 그것마저도 아름답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조금은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내 시선의 문제다.
그래서 결국 연애의 유효기간은 우리 개인의 시선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의 작은 노력, 작은 변화를 알아봐 주는 것. 그리고 그런 것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게 연인 간의 관계가 아닐까? 또 사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만드는 관계가 있지 않은가? A라는 사람이 B를 만났을 때와 C를 만날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걸 우리는 자주 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가 그러기 위한 노력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관계가 아닐런지...
그리고 사실 서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 좋은 친구로, 서로의 인생에 본인의 인생을 얹어놓으면서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로 신뢰가 생긴다면, 가정이라는 틀은 두 사람에게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것을 나는 주위에서 자주 봤다. 아무리 오래 사귄 연인이라 하더라도 같이 사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그래서 다시 연애할 때 같은 설레임과 새로움을 느꼈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새로움도 1-2년이 있으면 어느 정도는 사그라드는데 또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의 성장하는 과정에 따라 그 가정에 새로움이 더해지는 것 같더라.
물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더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상대에게 모르던 면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가정생활이 지옥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챙겨야 할 것도 더 많이 생기고,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거나 아내는 맨날 잔소리만 하는 것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아이 안의 새로운 모습들은 물론, 사실 남편 또는 아내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새로운 모습들이 있을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이가 잠들었을 때 한 5분만 거리를 두고 아내의, 혹은 남편의 새로운 모습이 있었는지를 돌아보다 보면 그래도 참 어머니로써, 혹은 아버지로서의 노력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 노력들을 통해 상호 간의 새로움을 발견할 때 도파민은 분비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두 사람 간의 사랑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20-30년을 살았어도 서로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부부들을 실제로 보기도 하지 않는가? 그게 가능한 것은 아마 두 사람이 그만큼 알게 모르게 노력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연애도,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짐이 아니라 기쁨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만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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