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인해서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증가했지만 누구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까지 나온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연애감정'이나 '사랑'을 운운했기 때문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연애를 하면 하는 것이지 연애'감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또 남녀관계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 말이 이해가 될 수 있는 맥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연인관계가 [사귈래 -> 그래 ->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고 시작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떤 연인들은 서로 편한 친구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부터 호감이 상호 간에 생기고, 어느 순간 손을 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상대방은 사실 같은 집단에 있는 선배라서, 선생님이라서 같이 밥 먹자, 차 마시자 등의 얘기에 응했는데 상대는 그걸 본인에게 호감이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더군다나 남녀공학에 합반을 하는 학교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라면 이성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착각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내 학부시절을 돌아봐도 '좋은 후배'라는 생각으로 연락을 하고 밥도 사줬던 후배가 내가 본인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경우도 있었다. 사실 남녀관계에서 그런 착각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런 착각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착각을 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이 성폭행과 성추행까지 나갔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나가게 만들었을까? 그 이면에는 사실 <남자들의 성적 욕구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연인 간에는 스킨십을 할 때 당연히 끝까지 가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작년 이맘때 이 매거진에서 스킨십에 대한 글에서 썼던 것처럼 대부분 여성들의 '첫 경험'은 (최소한 내 지인들에게 들은 바로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행복했거나 좋았던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은 연인의 실질적인 설득, 강요 또는 협박의 결과였던 적이 많은 듯한데, 그건 남자들이 <남자들의 성적 욕구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연인 간에는 스킨십을 할 때 당연히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자에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을 강요한 영향이 큰 듯하다. 자신의 욕구를 사랑이라고 표현하면서 말이다.
'미투'의 시작점은 사실 성추행도, 성폭행도 아니다. 그건 위에서 설명한 <남자들의 성적 욕구는 제어할 수 없는 것이고, 연인 간에는 스킨십을 할 때 당연히 끝까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문화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성폭행과 성추행의 가해자가 된 사람이 자신과 상대의 감정을 착각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가해자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갔을까? 만약 우리 사회의 문화가 '스킨십은 상대방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이며, 연인 간에서도 스킨십을 끝까지 하는 경우는 예외적인 것'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어도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을까? 물론 '미투'를 야기한 종류의 사건들은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빈도만큼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니,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없었다면 그런 피해를 당한 여자들이 최소한 본인이 당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표현을 하고 상대를 고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이 스킨십 또는 성적인 측면에 있어서 망각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있다. 그건 아이를 가져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여자들은 관계를 가질 때마다 어느 정도 이상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지인 중에서는 결혼을 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가질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잠자리를 한 후에는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기 전에는 속궁합을 반드시 맞춰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계를 갖고 난 후에는 본인의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반드시 경구 피임약을 먹는다는 지인도 있다. 다른 글에서도 쓴 말이지만, 난 사실 사람들이 말하는 혼전순결, 혹은 어느 연예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 후 관계라는 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그러한 마음을 헤아려 준다면 자연스럽게 지켜질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아닌, 아이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두 사람이 모두 분명하게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자가 첫 경험을 할 때는 두려움이 상당한 수준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거부감 없는 명시적인 동의를 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에 (사실 이건 조금만 공감능력이 있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남자는 자신의 욕구가 분출되면서 스킨십을 하려고 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거나 많지 않은 여자의 경우 끝까지 갔을 경우에, 만에 하나라도 아이가 들어섰을 때의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서 여자를 그 정도로 존중해 줄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스킨십에서도 당연히 여자의 마음을 배려해주지 않겠나... 그렇다면 미투의 대상이 될만한 사건들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니 그 대상이 되는 사건들 중에서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주는 심각한 수준의 사건만큼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아래 링크들에 있는 이전 글들에서도 썼지만 남녀 간에 사랑을 느끼는 것은 스킨십 여부에 달려 있지 않고,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진도'에 달려 있지 않다. 사실 사람들이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의 이면에는 '진도'가 만족감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데 그건 잘못된 것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나? 한 사람과 끝까지 갔다면 그 관계에서 더 새로울 게 없으니 다른 새로운 걸 찾아가는 게 결국 그 관계 밖에서 다른 진도를 찾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만약 새로움이 만족감의 크기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이 스킨십을 잘 할 줄 모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며 스킨십의 핵심은 사실 '진도'가 아니라 그와 연결된 '마음'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중에서 참조). 그래서 우리는 '미투' 사태를 접하면서 단순히 성폭행과 성추행의 문제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의 스킨십과 성문화 전반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기까지는 그러한 우리 사회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스킨십을 하기 전에 동의를 받는 것은 '분위기를 깨는 것'이 아니다. 동의를 구하는 것이 분위기를 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본인이 분위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동의를 구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킨십은 상대방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는 수준까지만 허락되는 것이며 상대를 설득하거나 부탁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상태라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렇게 해서 받아내는 동의가 동의라고 하는 것은 깡패에게 돈을 뜯긴 아이가 자발적으로 돈을 줬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사랑한다면서 왜 그러냐'라고 당신이 묻는다면 '당신은 상대를 사랑한다면서 상대가 싫다는데 왜 그러는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상대가 피하려고 하거나 싫다고 작은 소리로라도 말하면 그 말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숭이나 앙탈이라고 임의적으로 해석하지 말자.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서도.
인간이라면,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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