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을 쓴 이후...
이전 글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웠지만 쓰고 나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너무 스킨십과 관련된 얘기가 중심이고, 한국의 유흥문화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이게 사랑학개론에 맞는 얘기인지도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본편으로 나가고 그 얘기가 번외 편으로 나가야 하는 건 아니었나 싶더라. 그래서 조금 늦어진 만큼 생각을 더 다듬으면서 조심스럽게 쓰던 중에 어쩌면 이제서야 이 글을 정리할 수 있는 경험을 개인적으로 했다.
'남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어떻게 보면 슬픈 얘기지만 또 사실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사람이고 잘 통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안 생기더라는 말. 소개로 만난 사람과 두 번 본 후에 들은 얘기다. 사실 세 번째 약속도 잡았었는데, 어디에서 만날 지를 물었더니 갑자기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답이 오는데 얼마나 당혹스러웠던지. 이건 거의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해서 표를 사놨는데 공연 일주일 전에 결별 소식을 통보 받았던 몇 년 전 연애 이후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그 느낌이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분에 대해서 비슷한 느낌이었고, 둘이 뭔가 굉장히 편한데 엄청나게 막 타오르는 느낌은 없었던게 분명하니까. 사실 3-4년 전에 내가 그 분과 소개팅을 했다면 처음 보고 나서 애프터 자체를 잡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소개팅을 했을 때 뭔가에 한 번에 꽂히고 이성으로 보이는 것이 매우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감정이 어느 순간에는 피어오르는 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내가 그걸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연애에서 그런 감정이 전부는 아니라는데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소개팅과 같이 인위적으로 만난 상황에서 1-2번 만나고 나서 이성으로서 엄청난 느낌? 감정? 이 생기는 건...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 관계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경험도 몇차례 했기에... 사실 우리가 인위적인 만남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느 정도 친한 친구나 오빠 동생, 누나 동생으로 지내다가 연인이 될 때도 처음 1-2번 봤을 때 그런 감정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 최소한 둘 중에 한 명은 그러지 않고, 꽤나 많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별 느낌이나 감정 없이 서로를 대하지 않나? 그리고 사실 그런 감정들은 서로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디테일하게 경험하고 알게 되면서 생기기도 하지 않던가?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 연애에 있어서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과 있을 때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편안함이 있어야, 서로 통하고 거슬리는 게 없어야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다가 특별한 감정이 생길 수 있고, 사실은 그런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사실 1-2번 만나서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은 그 사람의 외모가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내가 이번에 내린 결론은 정말로 작년 수준으로 체중을 돌려놔야겠단 것이었다. @_@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사실 난 그래서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대화가 통하는지, 그리고 서로가 같이 있을 때 편한지 여부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편안함은 누구와 있든지 간에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니,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또 그러한 편안함이 전제되어야 연애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 인생에 상대의 인생을 쌓고, 상대의 인생에 나의 인생을 쌓는'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작업을 하는 것이 사실 연애이어야 하기 때문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사람들은 소개팅 3-4번 정도 하면 연인관계라고 공식화하는 것을 거의 공식으로 만들어놓은 듯한데 사실 3-4번 만나서 서로 뭐를 얼마나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 3-4번 중 한 번은 꼭 영화를 보러 가지 않나 보통? 그러면 실제로는 대화를 나누는 건 1-2번 정도인데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는 사실 거의 자기 PR이나 소개만 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형성된 연인관계는 사실 감정에만 기반이 된 것이 아닌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감정이 조금 식으면 두 사람은 엄청나게 싸우고, 둘 중 한 명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건 어쩌면 예고된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만남을 갖기 위해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결국 그런 연애가 스킨십이 중심이 되는, 아니 심한 경우에는 스킨십만 남기지 않던가?
그렇지 않은 연애의 목적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언제 연애를 하고 싶은 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그건 아마 10중 8-9는 '외로울 때'를 꼽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로움을 느낄까? 그건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것들을 같이 나누고, 힘들 때 옆에서 붙잡아주고, 우리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혼자 힘으로는 버티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이해해 준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 사람이 왜 힘들어하는지, 왜 우는지, 왜 웃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성장환경, 가치관, 경험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사람들은 온전히 이해받고 싶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상대에게 실망해서 이별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실 그러한 외로움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연인간에 서로를 솔직하고, 투명하며 디테일하게 아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하며, 다양한 경험을 같이 공유하는 것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뭔가를 같이 경험하게 되면 둘이 편해질 수 있으니까. 즉, 데이트는 사실 서로가 조금 더 편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디테일하게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상대가 조금 더 편해지고, 그러다 보면 내 인생의 조금 더 큰 부분을 상대에게 열 수 있게 지 않는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보통 상대가 여는 만큼 본인도 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쪽이 그렇게 열기 시작하면 상대도 조금씩 자신을 열게 되어 있다.
연애의 목적은 그렇게 서로를 서로에게 열어주기 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 인생에서 동전 하나만 한 부분을, 그 다음에는 주먹만한 돌만한 부분을, 그다음에는 머리 만한, 그다음에는 상체만한 부분을 상대에게 쌓고, 상대도 그와 마찬가지로 하기 위한 과정이란 것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의 모습을 쌓으려고 할 때 그걸 불편하게 여기가 거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 조금씩 자신의 인생을 상대에 놓고, 상대의 인생을 내 위에 놓다가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나 수준에 도달하면 보통 이별을 할 것이다. 그게 이상적이라는 얘기다.
온전히 이해받는 관계
연애는, 연인은 그래서 특별하다. 친구나 부모님에게도 열거나 공유하지 않는 부분들도 우리는 연인에게 열고 공유하지 않는가? 그건 상호 간에 신뢰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가 그런 나의 모습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연애가, 연인이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의 인생을 상대에게 차곡차곡 쌓다가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자신의 인생을 평생 쌓아도 된다고, 또는 이 사람만큼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어느 정도의 확신이 들 때 두 사람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장 모범적일 것이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연인이나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 연인이나 부부라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신이 필요한 만큼' 자신의 인생을 상대에게 얹어놓을 만한 사람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즉, 우리 인생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지만, 그래도 그 무게는 보통 상당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서 어느 정도는 같이 들어줘야 하는데,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짐의 최대치를 내가 짊어졌을 때 나머지를 옆에서 같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수준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단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 설명할 때 '누군가가 누구의 인생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어느 일방이 상대의 모든 것을 품어줘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에.
연애에서 감정적인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고, 결국 연애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인생을 최대한 공유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연애에서 매우 중요한 그 감정적인 부분은,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불꽃이 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편안함의 수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양은 냄비에 끓이는 물은 금방 끓지만 그 물은 불을 끄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끓지 않는다. 하지만 뚝배기가 밖에서부터 열을 조금씩 안쪽으로 천천히 전달하는 뚝배기는 물이 쉽게 끓지 않지만, 한번 끓기 시작하면 불을 꺼도 계속해서 끓는다. 그리고 끓기를 멈추더라도 그 온기는 양은 냄비에 비해서 훨씬 오래 보존된다. 결국 연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감정도 천천히 발전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쌓아 올린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은 필연적으로 더 깊어지고 서로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첫눈에 반했는데 계속해서 관계가 좋았다'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두 사람은 연애를 하는 중간 어느 순간에서 그 양은 냄비의 물을 뚝배기로 옮겨 담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자신의 독립적인 삶은 그대로 살아내면서도' 서로에 대해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서로의 짐을 나눠지며, 기댈만한 기둥이 서로에게 되어주는 것이 아마도 연애의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 간의 특별한 감정적인 부분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느껴지는 이성성은 아마도 욕정에 가깝지 않을까? 뭐, 그렇게 시작해도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 깊어진다면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말이다. 어디로 가든 서울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다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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