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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슬럼프가 왔다

지난 금요일. 회의 직전에 난 혼자 신이 난 상태였다. 회사로 돌아갔다 나온 이후 처음으로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간에 논문 개재 탈락 이메일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럴 땐 모든 걸 다 놔버려야 해. 마침 마감이 급한 것도 없잖아'라고 마음먹었다.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들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멍을 때리면서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게 약간의 시간과 공백이 허락되자마자 내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논문 개재 탈락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로스쿨을 다니다 변시를 미친 듯이 보고, 또 박사과정을 하면서 학교 센터일을 하면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에는 또 논문을 쓰느라 아등바등 살았고. 그래서 박사를 받은 직후인 올해는 좀 많은 게 달라졌으면 했는데, 올해 역시 아둥바둥의 연속이었다.

사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부터 내년 초까지 보장된 수입을 다 합하면, 내가 정규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경우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금액은 물론이고 프리랜서 1년 차가 번 금액 치고 예상되는 연간 수입이 엄청나게 많거나 대단하지는 않아도 또 그렇게 적지도 않은 편이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당장 필요 없는 것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이 기준이라면 수입이 '꽤' 되는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잠시 늘어난 자유 속에서 묘한 갑갑함 또는 막막함을 느꼈던 건 아마도 내 지난 1년이 만족스럽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난 1년을 돌아봤다. 내가 뭘, 어떻게 해 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쫓기면서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난 1년간 조직에 속해 있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감,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 쫓기며 살았더라.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브런치에 쓰는 글들도 반은 의무감과 뭔가를 만들고 이루고 싶단 마음이 적지 않게 들어간 상태로 쓰였던 것 같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일 텐데, 난 '풀타임 프리랜서 1년 차'는 그렇게 보내지 못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에서도 사실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받지 않았을, 내가 마치 다시 회사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일이 있는 것도 그렇게 느끼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 북에 응모하기 위해 속도를 내면서 쓰고 있던 '북한 사람도 모르는 북한 이야기' 시리즈도 마감을 이틀 앞두고 멈췄다. 그 시리즈도 마무리는 하겠지만, 그걸 시간에 쫓겨서 목적지향적으로 정리하고 싶진 않았다.

적지 않은 고민을 했고, 오랜만에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가 명확해졌고, 이미 몇 년 전에 생각했던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조금은 천천히, 쫓기지 말고, 내 삶을 나로 살아내자고 마음먹었다. 1달 여가 남은 2019년은 내년을 어떻게 살아낼지를 고민하고, 다짐하며 보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