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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글이 안 써진다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난 보통 고민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면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뻔뻔스럽게 '프리랜서의 일상생활'이란 매거진으로 만들었지만, 난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그 이후에 내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교수님께서 기관장을 하고 계시기에 거기 업무를 일부 하면서 받는 돈이 조금 있지만 그 돈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파트로 일했던 회사에도 들어갔다 나와 맞지 않아서 나왔으며, 그렇게 등 떠밀리듯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내 프리랜서 생활은 다른 '그럴듯해 보이는 프리랜서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보통 자신의 경력과 연관되어 있는 영역에서 일을 꾸준히 받으면서 했지만, 난 들어오는 일들은 모두 해야만 했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 3월부터 한 일들 중에는 전공과 관련된 일들도 있었지만, 수입으로만 따지면 그렇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일들도 하나의 틀로 엮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내가 뭐를, 어떻게, 왜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숨 쉬는 통로로 여기는 글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고민이 많은 것은 내년의 생활 때문이다. 올해는 정말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나의 종교적인 색을 빌려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정규 일자리를 찾지 못했을 경우 두려워했던 수입 수준보다는 훨씬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그 일들은 대부분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입금이 끝난다. 그렇다 보니 내년에도 나의 '사회적인 지위'는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일을 하면서 여러 고민들이 많아져서 내년,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글이 잡히지 않더라. 

그렇다. 이 글은 사실 전형적인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고민을 해결하려는 나의 시도다. 아니, 사실은 고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두려워서 그저 다짐을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며, 회사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온 내게 프리랜서를 하면서 궁극적으로 내 회사를 언젠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은 꽤나, 아니 아주 많이 두려운 일이니까. 

박사학위. 믿거나 말거나 난 진중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고민하다가 그걸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순간, 내 전공을 고려했을 때 가능하면 국책연구원에 갔다가 경력을 쌓아서 운이 좋으면 학교로 가는 정도의 경력만 생각했다. 사실 내가 브런치 북으로 발행한 '나는 어쩌다 박사가 되었나'는 그러한 나의 계획, 목표가 멀어 보이는 현실에서 몸부림을 치며 쓴 글이다. 그런 내게 박사학위, 그것도 법학박사, 그중에서도 통일법 박사학위를 갖고 프리랜서로 나서는 걸음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말도, 생각도 이렇게 하지만 현실에서 내 발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박사과정에서 들은 수업, 학위를 받을 때까지 썼던 글들이 모두 쓸모 있음을 깨닫고, 배우며, 느끼고 있다. 어쩌면 올해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10년을 돌고, 방황한 내 인생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상아탑 속에 갇혀서, 현실세계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내가 다시 속세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내 삶은 같은 틀로 움직일 것이다. 최근에는 심지어 내 전공으로 박사를 채용하는 연구원의 채용공고를 보고도 지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어떤 틀 안에서 할지를 고민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일을 벌이고 있다. 내가 학부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작년 여름에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파트타임으로 디지털 마케팅 회사를 하는 동생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아버지께서 그러셨었다. 내가 학부시절에 그쪽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지금까지 쥐고 있었던 거라고 그걸 써야만 하는 건 아니고, 본인은 내가 할 때 가장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서 모르셨던 게 있다면, 난 그때 디지털 마케팅 또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영역의 활동과 일을 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정말 싫어했던 요소가 있었고, 그게 내가 대기업을 그만두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잘못 보신 것도 아니다. 그 과정에는 분명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었다. 내년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갖고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2020년이 두려우면서도,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난 이제서야 자발적인 프리랜서가 되어가고 있다.